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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위인설관- 이종훈(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9-04-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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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단체장 선거가 끝나고 나면 ‘보좌관’ ‘위원회’ 등 새로운 조직이나 직함이 생긴다. 대개 단체장의 선거를 도운 인물이나 정치·사회적으로 한배를 타고 있는 이들이 ‘전문가’라는 점을 내세워 공직사회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말단부터 고위직까지 두루 포진해 단체장의 공약 실행을 주도하고 정무적인 역할도 담당하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뒷받침한다. 도내 자치단체도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내용은 엇비슷하다.

    ▼자치단체장의 정치적인 철학을 행정에 녹여 내리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길을 여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들이 기존 조직과 함께 융합해 나간다면 더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에 적합한 인물을 채용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든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조직의 건전성을 해치는 데다가 도민들의 세금이 ‘그들의 경비’로 들어가면서 낭비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때 영중추원사(정1품) 벼슬까지 올라간 조말생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세종에게 사직을 상서하면서 ‘고자위사설관(古者爲事設官) 미문유위인설야(未聞有爲人設也)’라는 말을 남겼다. ‘예전에는 일을 위해 벼슬을 베풀었고 사람을 위해 베풀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나이가 77세로 재주롭지 못한데도 임금이 벼슬을 베풀었다며 헛되게 천록(天祿)을 먹고 있는 자신을 도태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조말생은 당시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자신이 이 직책을 받았기 때문이라면서 직책을 면해 하늘의 견책에 보답해달라는 말까지 했다. 세종시대 공직에 몸담은 사람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은 ‘위인설관’이었다고 하니 조말생도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경남 공직사회에는 자기 편을 위해 자리를 만든 ‘위인설관’이 몇 자리나 있는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자리는 내부 조직에서 금방 탄로가 난다.

    이종훈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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