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30년째 헌혈봉사 최명씨

384번의 헌혈로 나는 따뜻한 삶을 수혈받았습니다

  • 기사입력 : 2019-04-11 22:00:00
  •   

  • 처음처럼 늘 한결같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느끼며 우리는 살아간다.

    저마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아갈 터. 마음이 변한 탓인지, 우리네 각자를 둘러싼 주위의 영향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가슴에 안은 그 가치의 소중함이 무뎌진 까닭인지, 우리는 때때로 처음의 마음을 잊으면서 살아간다.

    메인이미지
    최명씨가 창원시 의창구 창원헌혈의 집 수혈대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성승건 기자/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한결같이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여기 한번 보실래요?”

    지난달 30일 오전 취재를 위해 찾은 창원시 의창구 정우상가 2층 창원헌혈의 집. 이곳에서 만난 최명(46) 아름다운가게 창원사파점 매니저가 헌혈을 하기 위해 수혈대에 누운 채로 기자에게 손짓했다. 그에게 다가가 주삿바늘이 꽂힌 왼팔을 유심히 봤다. 이날 피를 뽑기 위해 찌른 주삿바늘이 보였고, 주위 곳곳에는 얼핏 봐도 바늘 수백 개 이상이 지나간 듯한 자국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흔적은 그가 고등학생이었던 지난 1989년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강산이 세 번 변한 시간 동안 그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또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팔을 걷고 주삿바늘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가 30년간 헌혈한 횟수는 이날까지 총 384번. 그와 그의 인생에서 헌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최씨도 헌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우연히 하게 된 단체 헌혈이었다. 까까머리 고2 시절, 공짜빵을 얻어먹는 재미로 인연을 맺었던 헌혈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라고 그는 운을 뗐다. 누구나 다 한 번쯤은 헌혈을 하지만, 그 다음 ‘또 한 번 더’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그가 헌혈을 30년 넘게 꾸준히, 400회 가까이 하게 된 계기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자, 시간만 나면 할 수 있는 쉬운 실천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어서였지요.”

    최씨가 멋쩍게 웃었다. 최씨가 끌어올린 기억 속 어린 시절, 그는 이혼가정 아버지 아래 자란 친구가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 마산에서 부산까지 걸어간다고 하자 기꺼이 함께한 아이였고, 또래들이 등교하기 이전에 먼저 학교에 도착해 교문 앞 쓰레기를 줍던 아이이기도 했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주변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어린 시절부터 품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헌혈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된 데에는 물보다 진한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다. 대학교 2학년이던 스물한 살 때였다. 당시 경남신문 기사를 통해 백혈병을 앓던 ‘유진’이라는 고등학생이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헌혈증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는 기사를 본 게 시작이었다. 주변의 헌혈증을 모아 들고 유진이를 찾아갔다. 뼈를 깎는 아픔에도 간호하는 어머니를 더 걱정하던 착하고 어른스러웠던 소녀의 모습은 그에게 큰 감동을 줬다. 헌혈증을 전달한 뒤 첫번째 수술은 다행히 잘 마쳤지만, 유진이는 그해를 넘기지 못했다. ‘내가 헌혈증을 하나라도 더 모아줬으면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과 아쉬움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후 그에게 헌혈은 누군가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리고 초심을 지켜주는 ‘나침반’으로 남았다.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의 작은 실천으로 전하는 사랑이 하늘 위 착한 유진이를 웃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후 저는 더 열심히 헌혈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한참 흘러 2002년. 그는 태풍 루사가 상륙하던 날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진해의 한 초등학교 5학년생이 헌혈증을 구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들었다. 그 학생의 이름도 유진이었다. 그길로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당장 택시를 잡아타고 진해로 가 그동안 모은 헌혈증 100장을 당직 선생님에게 건네주고 왔다. 혹여 트라우마로 남게 될까, 최씨는 유진이와 이름이 같았던 진해 초등학생의 소식을 물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몸담고 있던 아름다운가게 창립 행사가 열린 당시 마산대우백화점 앞 마당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그 학교 선생님의 병상일지가 사연으로 소개됐다. 그 친구가 다 나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그는 온 마당을 뛰어다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의 뿌듯했던 기억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심장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헌혈증을 전달한 후 완쾌되자 보람을 느꼈다. 상을 바라고 헌혈이나 봉사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 경남신문은 ‘생명의 촛불 밝히는 최명씨의 헌혈’이란 제목과 함께 지난 2010년 세계헌혈자의 날에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은 그를 조명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헌혈전도사이기도 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변 사람들 ‘밥을 먹여가면서’ 헌혈을 시킨단다. 지난 2010년 결성된 경남헌혈봉사회 초대 회장을 5년간 맡았다. 그 사이 그와 같은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 마흔 명을 넘었다. 최씨와 회원들은 매년 헌혈이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일반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생활문화로 자리잡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365헌혈릴레이’를 목표로 85회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10년 가까이 헌혈한 양은 1500ℓ를 훌쩍 넘어섰다. 성인 남성 기준 약 308명분의 혈액이다.

    그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나눔을 헌혈로만 실천한 게 아니다. 대학시절엔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남은 시간 대부분을 수화 봉사동아리 활동을 했고, 사회로 나와서도 소년소녀가장돕기 봉사를 이어갔다. 마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도 도시락 봉사배달을 오랫동안 해오던 그는 헌혈 100회를 했던 지난 2004년, 아름다운 가게 경남 1호점에서 활동천사(자원봉사자)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내외 소외이웃과 공익활동을 돕는 일을 지금껏 해오고 있다. 도시문제로까지 닿은 사회적 관심은 시민들의 보행권 확보를 위한 모임인 ‘걷는 사람들’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헌혈로 나눔을 실천하는 최씨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는 여전히 헌혈을 기피하고 있기도 하다. 보관기간이 짧은 혈액의 특성상 헌혈자수는 꾸준히 유지돼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직장인들의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헌혈공가제’는 생소하기까지 하다.

    그가 사회에 던지고 싶은 화두 또한 이러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어떠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헌혈을 할 때마다 가슴에 새로운 따뜻한 피가 수혈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나눔’인 헌혈에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저도 변함없이 늘 건강하게, 나눔의 보람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도영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