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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3·1만세 재현 현장의 착시

  • 기사입력 : 2019-03-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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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만세운동 재현 현장에서 일제의 잔재를 봤다면 기자의 착시일까?

    사천초등학교의 기미년 대한독립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지난 21일 열렸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돌을 맞아 여느 해보다 철저한 준비와 열정으로 규모 있게 치렀다. 자주독립을 외쳤던 그날의 감동이 전해져 뭉클함을 느꼈고, 초등학생에게는 선열의 애국애족을 기리는 역사의 교육장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주최 측의 융통성 없는 진행과 과욕이 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행사장 앞쪽에는 의자를 배치해 내빈석을 마련했고, 뒤쪽에는 초등학생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내빈석에는 연로한 시민과 졸업생들도 앉았지만, 앞좌석은 늘 그렇듯 국회의원, 시의원, 기관장 등이 차지했다. 재현행사의 주역인 학생들은 뒷전에 밀려난 반면, 소위 유지들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구태의연한 구도였다. 그래도 행사가 원활하게만 진행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문제는 본 행사에 앞선 1부 기념식만 50분이나 끌면서 뙤약볕 아래 선 아이들은 큰 고역을 치러야 했다. 20분을 넘기면서 몸을 비틀기 시작했고, 30분이 되면서 쪼그려 앉는 아이들까지 발생하는데도 기관장들의 대회사·환영사·축사 등은 꿋꿋하게 이어졌다. 40분께는 기자조차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면서 행사 관계자에게 “빨리 마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예정에 없던 국회의원이 오는 바람에 정치인들이 몰리고, 누구는 하고 누구는 뺄 수 없어서…. 대신 짧게 하라고 했는데”라며 궁색한 변명만 하고 돌아섰다.

    유신시절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서 애국조례를 했다. 무더운 여름이면 쓰러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결코 교장 선생님의 길고 지루한 훈시는 끝나지 않았다. 역사적 사명으로까지 여겼던 애국조례가 나중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임을 알고는 배신감마저 느꼈는데…. 학생 시절 악몽을 40년이 다 돼서 만세 재현 행사장에서 느꼈다면 너무 과민한 탓일까.

    정오복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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