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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41) 제24화 마법의 돌 41

“몇 달 동안 잘 놀았습니다”

  • 기사입력 : 2019-03-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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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신여성들이 자유연애를 한다고 이 남자 저 남자 전전하더니 일본 부자의 첩이 되기도 하고 조선 부자들과 동거를 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세파에 시달리다가 걸인이 되거나 행려병자가 되어 죽기도 했다.

    그 무렵 조선에 창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황성의 달’ ‘사쿠라’ 같은 노래가 유행했다. 이재영도 유성기를 사서 황성의 달을 들었다.

    봄날 높은 누각에 꽃놀이 잔치

    주고받는 술잔에 웃음소리 들린다.

    천년 소나무 가지 사이로 달빛이 비추건만

    지나간 자취 어디서 찾으랴.

    가을 군영에 서릿발 감돌고

    맑은 하늘에는 기러기 몇 마리 날고 있네.

    갑옷과 검이 숲처럼 빛나던 옛날의 영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 황성 위의 달은 옛날과 다름이 없는데

    성곽에는 넝쿨이 우거지고 소나무 숲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네.

    산천은 사철 변함이 없건만 세상은 흥망성쇠가 무상하여라.

    아침이슬 같은 덧없는 인생에 달빛이 비치노니

    아아, 황성의 달이여



    세상은 부질없고 인생은 허무하다. 일본의 노래도 삶의 허무와 부질없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도 창가가 널리 불리기 시작했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도 삶의 허무를 노래하고 있었다.

    부자들은 확실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자들 중에는 미곡상도 있고, 포목상도 있고, 술도가도 있었다. 이재영은 술도가도 큰 관심을 가지고 살폈다.

    ‘술은 밥처럼 항상 먹으니 장사가 잘 되는구나.’

    이재영은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조선에 돌아오자 뜻밖에 대구의 요정에 출입했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요정 출입을 하자 집안이 들끓었다. 이재영의 집안이 종가였기 때문에 어른들의 불만이 더욱 높았다.

    “어떠냐? 요정에 출입하니 지낼 만하냐?”

    하루는 이학수가 이재영을 불러서 물었다.

    “예. 몇 달 동안 잘 놀았습니다.”

    이재영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만치 놀았으면 됐다. 이제 혼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학수가 넌지시 물었다.

    “예. 해야지요.”

    이재영이 대답했다. 이재영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빠르게 혼담이 추진되었다. 그러잖아도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안동에 맞춤한 처자가 있다고 했다.

    성씨가 풍산 류씨였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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