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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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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38) 제24화 마법의 돌 38

“고생이 많구나. 상주는 네가 해라.”

  • 기사입력 : 2019-03-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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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의 죽음은 방송이 먼저 보도했다. 이정식은 임종한 이재영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죽음이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죽음에 약한 것이 여자들이었다. 아내가 울고 딸이 울었다.

    이정식은 울지 않았고 아들도 울지 않았다. 병원의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고 비서실과 병원이 이재영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삼일그룹 회장이자 창업주인 이재영 회장이 오늘 오후 7시 향년 83세를 일기로 삼일병원에서 운명했습니다. 병원은 사인이 심근경색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재영 회장은 삼일그룹 모기업인 삼일상회를 일제 강점기에 대구에서 창업하여 오늘의 삼일그룹을 일구었습니다. 삼일그룹은 이정식 부회장과 전문경영인인 손영학 부회장이 있으나 일단 손영학 부회장이 삼일그룹 회장에 취임할 것으로 보입니다.”

    방송이 먼저 이재영의 죽음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정식은 빈 병실에 앉아서 장례가 진행되는 절차를 지켜보았다. 그가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흰 와이셔츠와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상주를 할 준비를 하는 것뿐이었다.

    이재영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고생이 많구나. 상주는 네가 해라.”

    형인 이성식이 상복을 입고 왔다. 특별히 슬프거나 비통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임종했을 때와는 달랐다. 어머니는 7년 전에 임종했는데 그때 오랫동안 울었었다.

    “아닙니다. 장남인 형님이 하셔야지요.”

    “독일에서 급히 오셨다면서요? 서방님이 고생이 많으시네.” 형수인 민지영이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형수님이 고생이 많으시죠.”

    이정식은 민지영에게도 인사를 했다. 민지영은 검은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사업 수완이 뛰어나서 기업을 여러 개 거느리고 있었다. 이재영이 병원에 있을 때 자주 면회를 하고는 했다.

    사촌형제들과 작은아버지 이길영도 왔다. 이재영은 이길영과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이길영도 이재영을 잘 따랐다. 그는 빈소가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통곡을 하고 울었다.

    “저녁식사라도 해야지.”

    이길영이 이정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작은아버님은요?”

    “나도 아직 안 했다. 서산에서 올라오느라고… 장례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걸릴테니 우선 우리끼리 저녁을 먹자. 구내식당 어떠냐? 여기 설렁탕이 괜찮던데….”

    “제가 작은아버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래. 큰일을 하려면 배부터 채워야 돼.”

    이정식은 이길영과 함께 병원의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병원의 구내식당은 이미 비상상태로 변해 있었다.

    비서에게 지시하여 설렁탕 두 그릇을 가져오게 했다.

    ‘빠르네.’

    방송에서 이재영의 일대기가 다큐멘터리로 보도되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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