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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격쟁- 이종훈(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9-0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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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민의를 수렴하는 대표적인 제도는 왕이 대궐을 나올 때 가마 앞에서 억울한 일을 아뢰는 상언(上言)과 꽹과리 등을 두드려 읍소하는 격쟁(擊錚)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임금 때 가장 활성화됐다고 하는데, 흑산도 백성 김이수가 정조 임금의 행차를 막아서며 흑산도에서 생산되지도 않는 닥나무 공납 철회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정조는 상언과 격쟁을 통해 무려 3500여 건에 이르는 민원을 해결했다고 한다.

    ▼민의를 전하고 소통하는 방법은 빠르게 발전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의견이나 희망을 알리는 시대로 변했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가 개설한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이다. 현재까지 47만여 건의 청원이 게재됐다고 한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71건의 청원에 청와대가 답변하면서 ‘소통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음주 운전자 엄벌을 촉구해 제정된 ‘윤창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치단체들도 청와대의 국민청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부산시는 청원에 3000명 이상이 공감하면 시장이 직접 답변을 한다. 서울 영등포구청도 1000명 이상의 공감을 얻으면 구청장이 직접 설명에 나선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경기 성남시와 화성시, 서울 강남구에서도 일정 수 이상의 주민이 공감이나 추천을 하면 자치단체장들이 답변에 나서는 청원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는 영향력만큼이나 부작용도 크다. 가짜 뉴스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남발하면서 사회적인 갈등 요소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격쟁의 남발을 막기 위해 내용에 제한을 두는가 하면 무고로 밝혀지면 곤장이나 유배형에 처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국민청원 게시판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성숙한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운영 방법 개선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국민의식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민의 수렴의 장이 또 다른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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