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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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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손영희(시인)

  • 기사입력 : 2019-0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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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의 요청으로 뜻하지 않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인은 고정적인 일꾼이 필요했고 나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에 대한 평소의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귤을 잘 따는 노련한 사람이 아니라 귤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 같은 초짜 일군을 초청한 것이다.

    지인의 남편은 제주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다 퇴임한 분으로 귤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제주도의 대표 농산물로 손색이 없는 좀 더 맛있는 귤을 생산할 수 있을까를 연구해서 타이백 귤이라는 명품 귤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품종도 개발하는 중이라 했다.

    서귀포는 비가 잦은 곳이다. 비가 오면 귤을 따지 못해 이삼일을 쉴 수 있다. 그때를 이용해 제주도 곳곳을 돌아보며 모처럼 한가로운 여행을 했다. 평소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내 삶의 철학이 빛을 발하는 시간들이었다.

    겨울인데도 꽃들이 지천이다. 여간해서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제주를 동경하게 하는 데는 날씨도 한몫하는구나 싶었다. 검은 돌담 안의 채소들, 바람에 흔들리며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는 억새 군락들, 마음을 탁 트이게 해주는 바다, 그리고 검은 돌 해변, 세계적인 관광지에 손색이 없음이다.

    제주에 아주 눌러 살면 어떨까 싶어 지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문제는 집을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땅값이 너무 올라 웬만해선 매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제주 분들은 땅값이 오르는 것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외지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자본가들과 외국인들이 여기저기 건물을 짓고 잠식해 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염려스러워했다.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천혜의 자연 속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몇 달 전 와보았던 제주와 현재의 제주가 달라 보이는 건 사실이다. 도로도 많이 생기고 길가의 오래된 나무들도 베어지고 우후죽순 늘어나는 내용이 빈약한 박물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놀이동산들. 제주라는 명품 여행지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제주 분들은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나름대로 모색하고 있다. 작가들은 작가들대로 제주의 역사나 생활상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제주를 관광지화시키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땅을 좀 더 오래 보전하고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한때 유행했었다.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제주는 우리들에게 본향 같은 곳, 언제라도 가서 쉬고 싶은 곳,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받고 싶은 곳이다. 내년을 또 기약해 본다.

    손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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