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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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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귀로 먹고사는 직업- 조정현(변호사)

  • 기사입력 : 2019-0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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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법정 드라마에 등장하는 변호사는 법정에서 말로써 치열한 공방을 하는 사람이다. 법정에서의 구두변론이 변호사 업무의 핵심 중 하나임을 감안한다면 변호사가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변호사는 입으로만 먹고사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변호사에게는 화려한 언변보다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귀가 더욱 필요하다. 필자도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변호사가 되고 보니 몸이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듯 다른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다쳐 분노가 가득한 사람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오랜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린 사람, 공사를 실컷 해주고도 공사대금을 못 받은 사람, 배우자의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 등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마음 가득히 차 있어 합리적 사고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고객들에게 그 상황을 법리적으로 분석하고 최상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냥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가해자 욕도 하면서 분노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한 이후에야 합리적 해결책에 대한 대화도 가능해졌다. 물론 그렇게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고객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변호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말을 계속 듣는 것이 괴로워서 속까지 울렁거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듣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고객과의 상담 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든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듣고 맞장구쳐 주는 것이 더욱 편해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것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누구보다 큰소리로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그것도 맞장구까지 쳐가면서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을 말이다. 변호사는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고 귀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오늘도 말하기보단 듣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해 본다.

    조정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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