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해지면 강해지는구나
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처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가진 것 다 날리고 돌아온 탕아처럼 직립의 습관 하나로 우두커니 서 있는 알몸의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굴참나무인가? 밤나무인가? 단풍나무인가? 돌배나무인가? 산수유나무인가? 생강나무인가? 이름이 흐릿해진 그 원시의 흐릿함을 좋아한다. 나도 흐릿해져서 저들과 한통속이 되고 싶다. 저들의 언어를 받아 적고 싶다. 그러나 나는 혹한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외투를 껴입는다. 혹한을 알몸으로 맞서는 겨울나무! 이 도저한 아이러니를 이 시는 고통(‘밥도 먹지 않고/벌거숭이로’ ‘머리는 땅에 처박고/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동상에 걸린 채로’)을 자처하여 더 큰 고통에서 놓여나는 고행수행에 빗대어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며 구체성을 확보한 긍정의 미학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우리 겨울나무처럼 힘들고 서럽더라도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고’ 참아볼 일이다. 흐릿함의 몽상일랑 겨울날의 사치로 떨쳐버리고 어떤 혹한과 비바람이 닥쳐도 끄떡하지 않을 이름(꿈)을 일구어 볼 일이다.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