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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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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 기사입력 : 2018-10-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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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面에서 심은 코스모스 길로 젊은 며느리들이 꽁지머리를 하고 달리기를 한다. 그들이 지나가면 그리운 냄새가 난다. 마가목 붉은 열매들이 길을 막아서보지만 세월은 그 키를 넘어간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여름이 또 가고 나니까 민박집 간판처럼 허술하게 떠내려가다 걸린 나무등걸처럼 우두커니 그냥 있었다. 이 촌구석에서 이 좋은 가을에 나는 정말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여러 번 일러줘도 나무들은 물 버리느라 바쁘고 동네 개들도 못 본 체 만 체다. 저들도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 나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소주 같은 햇빛을 사발떼기로 마시며 코스모스 길을 어슬렁거린다.

    ☞ 낙향한 시인의 가을날의 일기 같은 이 시를 좀 더 실감나게 읽으려면, ‘소주 같은 햇빛이 사발떼기로’ 쏟아지는 가을 날, 꽃의 신이 계획한 꽃을 다 만들고 남은 자투리로 만들었다는 ‘코스모스’길을 한나절 걸어볼 것, 그 길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시집온 ‘젊은 며느리들이 꽁지머리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그중에 한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갈연석처럼 그을린 촌 남자들을 볼 것, 이 모든 것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글에 미쳐 생계도 제쳐두고 시골민박집을 떠도는 시인을 만나면 금상첨화. 이쯤 보고 나면 생생히 들릴 것이다. ‘이 촌구석에서/이 좋은 가을에/나는 정말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저들도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나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까지 들린다면 이 시 읽기는 완성. 다 읽고 코끝이 찡해지거나 가슴이 후련해졌다면 당신은 이미 그들과 한통속이거나 한통속이었거나.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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