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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 양목선최(梁木先?) - 마룻대가 먼저 부러지다. 중요한 인물이 먼저 세상을 떠나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8-10-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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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공과대학 김호길 총장이 1988년부터 박약회 회장을 맡아 박약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총회 때는 반드시 한복을 입고 회의에 참석했다. 1989년 제5회 총회를 포항공대에서 개최하였고, 자신도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 초 4대 회장으로 다시 추대되었다.

    김 회장의 성함을 필자가 처음 들은 것은 1983년 8월 말경이다. 하숙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미국에서 10여 년 유학하고 온 교수가 신문을 보다가 “이런 분은 연구하도록 그냥 두어야지!”라고 했다. 필자가 물었더니 “세계적인 학자지요. 미국서도 알아줍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날 아침 신문 기사의 내용은 ‘럭키금성(지금의 LG)에서 세계적인 공과대학을 건립하는데, 김호길 박사에게 장차 총장을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연암공과대학(蓮庵工科大學)이 본래 세계적인 공과대학을 목표로 그를 초빙한 것이었다. 잘됐으면 지금의 포항공과대학은 없고 세계적인 연암공과대학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약속을 어기고 4년제대학 인가를 끝내 해주지 않았다. 1985년 초 김 회장은 대통령에게 옛날 상소처럼 친필 호소문을 보냈다. LG에서는 어쩔 수 없이 2년제 공업전문대학으로 개교하였다. 김 회장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었다.

    그때 포항제철에서도 박태준 회장이 세계적인 과학기술대학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었다. 1986년 6월 처음 만났는데, 뜻이 맞아 포항공과대학 건설의 책임을 맡기고 학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려면 우수한 교수를 초빙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출신이라 해도 세계의 명문대학에서 대우를 받고 있는 학자들이 시골 포항의 신설대학에 오겠는가? 그러나 그는 마침내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동포학자 100여 명을 초빙해 왔다. 그는 한문을 하는 사람을 보면 매우 좋아하는데 필자가 한문을 전공한다 해서 특별히 좋아하였다. 총장 공관에 초청되어 그의 조부 문집을 받은 적이 있다. ‘다른 공부 다 접고 퇴계학(退溪學) 연구에 몰두하라’는 권유도 받았다. 1991년 성인의 날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학생들을 위해 초청해서 강연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 뒤 필자는 1994년 2월 북경사범대학으로 떠났다.

    1995년 5월경 한국에서 물건 싸온 신문을 펴 보니 모 교수가 쓴 글에 “김 총장의 명복을 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되게 무식하네. 살아 있는 분에게 명복이라니?” 하고 다 읽어보니 김 회장은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앞으로 박약회는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梁 : 대들보 량. *木 : 나무 목.

    * 先 : 먼저 선. * : 꺾을 최.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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