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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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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스마트폰 세상-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18-10-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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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나 연인보다 더 가깝다. 굳이 서먹한 만남으로 어색한 시간을 보내며 애써 표정관리를 할 필요조차 없다. 필요한 건 찾으면 되고 모르는 건 물으면 된다. 대가를 요하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는다.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고 휴대하기도 편하다. 헤프거나 과묵하지 않으며 주인에게 맹종하다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 아니라 바로 죽는다. 예수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지만 이것은 숨통만 눌러주면 바로 살아난다. 죽기 전 기억을 상실하지도 않고 살아나서도 자기를 죽인 주인을 도다리 눈으로 쳐다보거나 입을 닭똥집처럼 하지도 않는다. 최저 임금을 주장하지 않고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일 시켜도 불평불만이 없다.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재간이 있고 없이 살 자신이 있는가. 이미 수족이나 다름없으니 하루만 없어도 불안하고 초조하다. 길거리나 버스에서 식당 찻집 술집에서도 이것만 들여다본다. 귀는 이어폰으로 소리를 듣고 눈은 내장 구석구석을 훑는다. 아무리 맛대가리 없는 시간도 이것의 이빨에 씹히면 뭉개지고 질긴 근육질의 밤도 이것의 까칠한 손길이 닿으면 속절없이 무너진다. 데리고 살다가 구석에 처박아둬도 괜찮고 예고 없이 귀때기 새파란 새것으로 바꿔도 따지지 않는다. 놀랍도록 깔끔하고 미치도록 완벽하다.

    이쯤 되면 성질 급한 혹자가 무슨 개 풀 뜯어먹다가 빠진 이빨 떨어져 지나가던 개미 척추 골절되는 소리 하느냐고 거품 물지 몰라 밝히자면 스마트폰 얘기다.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일수록 스마트폰에 너무 빠져 산다는 얘기다. 닭 모이 쪼아 먹듯 스마트폰은 손가락이란 부리로 뇌를 쪼아 먹어 망각에 이르게 하는 신통한 마법이라도 지닌 듯하다. 귀 막고 눈멀어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니 길 가던 사람이 가로등에 머리를 박고 오토바이에 치여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한다. 게임중독에 빠져 사람을 죽여 놓고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도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지식을 탐지하니 향학열도 사라지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고백할 일이 있어도 화상채팅이나 전자문자가 대신하니 간절하고 애틋한 사랑의 불씨는 지펴볼 기회도 없다. 빠르고 편하고 간편한 습관들의 비만이 낭만을 죽이고 소중한 추억의 목을 비틀어버린다. 기다림의 미학은 거추장스러워지고 사랑을 파종할 눈물의 씨앗은 말라죽었다. 첨단이 세상을 편하게는 하지만 모든 걸 좋은 세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로봇이 인간의 체온으로 말을 하게는 할 수 있지만 숨 막히는 부정맥의 떨림으로 진정한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스마트폰에 고정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좀 돌려보자. 스마트폰이 우리가 인지할 세상을 너무 외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고 그저 부대끼며 사람 냄새를 풍기고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던 세상을 말이다. 스마트폰의 기계음이 사람의 숨소리보다 크다.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빠져 죽어도 좋을 연인의 눈망울을 보았던가. 이웃끼리 인사하고 말을 건네 본 적은 언제였으며 버스에서 연로하신 분께 자리라도 양보해본 적은 있는가.

    남을 배려하는 작은 마음이 스스로 행복지수의 발꿈치를 들어 올려 영혼의 키를 쑥쑥 키워 올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스마트폰 충전 대신 방전된 우리 인성을 충전시켜 건조한 가슴을 녹여보자. 그리운 안부가 있고 지워버린 주소가 있고 방치한 사랑이 있다. 소원했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 곁에 두고도 무심했던 것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면 금방 혈기가 돌며 온화한 웃음이 번진다. 그 볼그레한 볼을 살짝만 터치해보면 들을 수 있다. 벌떡거리는 심장소리! 스마트폰의 기계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시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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