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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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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해바라기와 아버지- 이윤(시인)

  • 기사입력 : 2018-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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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산외면 남기리 기회송림공원 옆 강변 일대에 ‘해바라기 하늘에 날다’라는 애드벌룬이 보였다. 늦은 오후에 친구랑 해바라기 길을 걸었다. 방죽에는 키 작고 가녀린 해바라기들이 해 저무는 서녘을 향해 노란 불을 밝히고 있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와 연결되어 더 빠른 풍경으로 지나간다. 꽃길을 가로지르는 중앙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꽃길을 걷는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밀양강의 방치된 하천부지에 지난 6월 밀양시 산외면 마을 주민과 기관을 포함한 10개 단체의 100여 명이 1만3000평이 넘는 부지에 해바라기를 심고, 담당 구간을 정해 관리하며 협동해서 만든 단지라고 한다. 여기에 올해부터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해바라기,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버틴다는 건 무척 쓸쓸한 일인 것이다. 친정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는 요즘 내 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바람이 나무에 말하고 싶을 때, 나무가 바람에 말하고 싶을 때 서로의 입술을 포갠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건 상대의 혀를 움직여 주는 것. 소통은 바람과 나무가 한결 후련해지는 것!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스스로 깨우쳐주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누군가가 가차 없이 두들긴 잘못으로 호되게 대가를 치른 적이 있다고 하자. 꽃과 꽃 사이, 나비와 나비 사이, 풀과 풀 사이에 노란 해바라기로 피어난 꽃의 몸이 뜨겁다. 쾌활한 사랑이다. 사랑이란 온몸으로 맞이하는 운명이라 누가 말했던가. 그것은 이 시대의 마지막 편견. 해바라기가 스크랩한 한 나비를 저장하며 환하게 웃는다. 눈물의 속옷을 훌훌 벗어버린다. 서로의 반경에 갇혀버린 물리적 비애가 같은 형태로 헤엄치며 공회전한다. 때론 시집 한 권을 창문 삼아 꽃 피는 것 바라보다가 비애에 젖기도 하지. 여기는 슬픈 것들이 울기 좋은 곳, 온종일 바라보다 주근깨만 박혔나.

    해바라기, 삶이란 날마다 길 떠나는 연습일 뿐이라며 몸의 중심으로 뜨거운 발길을 옮기고 있다. 세상 살아가는 법이 저 안에 다 있다. 날마다 목을 빼고 기다리는 숙명 안에서도 화양연화의 시간은 있었으리. 저릿저릿 피가 도는 팔 푼의 아침도 있었으리. 서로의 안팎을 힘껏 끌어안고 서로를 감싸고 도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빛났던 시간, 우울을 말아 쥐고 목쉰 그리움으로 불러보는 아득한 이름도 있었으리.

    해바라기, 나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잡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란색의 꽃이다. 해바라기의 일생은 일편단심 해를 바라보는 꽃이라고도 한다. 자나 깨나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꽃나무, 해를 바라보는 꽃이라고 해서 해바라기라고 이름을 지었단다. 그 무거운 꽃송이를 하늘을 향해 들고 있는, 어떻게 보면 슬프고도 안타깝다. 아버지의 남은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나는 어느새 해바라기가 되어간다. 그늘은 꽃의 시간을 잠시 묶어 두기도 한다. 이미 피었다고 생각했던 꽃이 그늘 속에서 한창이다. 나의 그늘 속에도 어떤 기억은 꽃을 아직 접지 못해 노오란, 해바라기다.

    9월의 어느 날, 방죽 길을 가득 메운 수많은 발걸음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회색 강바람에 떨고 있는 해바라기 그리고 나, 홀로 집을 지키며 집에서만 서 계시는 고령 아버지의 하루가 통점 되어 자꾸 눈앞을 찌른다. 꽃나무는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낮은 골을 따라 바람으로 스민 시간과 한 굽이 세찬 물살 속을 내내 서서 기다렸을 해바라기, 오늘도 아파트 복도를 서성거리며 집으로 가는 딸에게 손 흔들고 계실 아버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나 자신을 견딥니다.” -E.M. 시오랑

    이 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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