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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보호받아야 할 가로수- 박진호(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18-10-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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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익숙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 길가에 우수수 떨어진 지뢰를 요리조리 움직여 피해야 한다. 잎사귀의 독특한 모양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다채로운 도시 풍광을 선사하지만, 그 열매의 지독한 냄새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나무가 바로 은행이다.

    도심 가로수의 약 3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심겨진 나무지만, 해마다 9월말에서 10월 낙과(落果) 시기가 되면 시군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열매로 인한 민원이 빗발친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그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계절이 온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는 수종은 은행나무, 벚나무류,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이팝나무 등이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간단히 선별된 수종인 것 같지만 실은 꽤나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 선정된다.

    가로수는 도심의 빠른 녹지화를 위해 속성으로 자라야 하며, 동시에 공해와 병충해에 강해야 한다. 뿌리를 깊게 내려 험악한 날씨에도 잘 견뎌내야 하지만, 줄기는 곧게 자라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야 한다. 공기 정화와 수분 배출을 통해 도시열섬효과를 완화해야 하고 보행자들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편의에 맞는 수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가로수가 이런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었을까?

    가로수가 우리나라 역사 사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다.

    단종 때 의정부 대신들이 ‘봄부터 경외의 큰길 좌우에 흙의 알맞은 데에 각종 나무를 많이 심고 벌목하는 걸 금지하라’고 청하는 기록이 나온다. 보행자들에게 길을 알리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며 각 수종마다 의미를 숙고하여 심겨졌다.

    ‘가로수’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식재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다. 이때 많이 사용된 수종은 수양버들로, 벚나무와 달리 반감이 적고 빠르게 생장하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은 궁궐 정원에서나 볼법한 수양버들이 70년대 이전까지는 가장 흔한 가로수였다.

    하지만 수양버들의 홑씨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는 오해로 하나둘 베어졌고 그 자리를 양버즘나무가 차지하게 되었다. 양버즘나무는 공기 정화 능력과 수분 배출을 통한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한동안 많은 수가 식재되었지만, 성장이 너무 빠르고 잎사귀가 커서 간판을 가리고 햇볕이 들지 않는다며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고, 이후 점차 그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은행나무는 80년대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동안 아름다운 도시조경을 만들어내며 그 인기가 급증했다. 전 세계적으로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생명력이 강한 수종으로 천적이 없고 병충해와 도시공해에 강하다. 온도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 도심의 가로수로 사랑받는 종이지만, 최근에는 열매의 악취로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각 시군에서는 매해 많은 인력과 크레인을 동원하여 열매채취 작업과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꾸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제주도의 도로 확장을 위해 삼나무가 무참히 베어져 대대적인 국민청원이 일어났다.

    발전과 효율을 중시하던 시대에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생각을 고려할 만큼 사회는 발전하고 있다. 길가의 가로수 역시 그렇게 존중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수종을 숙고하여 선택하고 다양하게 식재해야 한다.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가 도심 가로수로 식재된 지중해의 도시들처럼 그 지역에 어울리는 가로수를 찾아 심어야 하고, 한 가지 수종의 비율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일본 도쿄처럼 다양한 수종을 식재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마구 심고,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잘려나가지 않아야 한다. 우리와 함께 도시를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그들의 생활공간 역시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박진호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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