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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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북유럽 가곡 전문가 최화숙 성악가

사천 귀향 4년째…‘음악도시 삼천포’ 전도사 꿈꾸다
에스토니아서 만난 북유럽 가곡
2011년 에스토니아 음악대학 유학

  • 기사입력 : 2018-10-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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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야, 오로라, 피오르드 협곡, 침엽수림 등 북유럽의 신비롭고 황홀한 자연 풍광은 예술가들에게 감성적 정서를 품게 했다. 자연과의 친밀함, 넓은 공간 속에서의 삶의 여유는 서정성을 더했다.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 북유럽 문화 강국에서는 일찍이 문학이 꽃을 피웠고, 긴 겨울 실내생활로 인해 남유럽에 비해 철학적 고뇌가 깊다. 또한 실내생활이 긴 환경 때문에 가정에서 듣는 오디오가 발달되면서 다양하고 독창적인 북유럽 현대 음악이 폭넓게 뿌리내렸다.

    특히 시벨리우스, 그리그, 스텐하마르, 킬피넨 등으로 대표되는 북유럽 작곡가들의 우리 정서와 닮아 있는 아름다운 가곡들이 많다. 가사가 되는 시어의 문학성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독일 가곡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기억되는 곡은 거의 없다. 단지 서정적이고 슬픈 선율의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Lied)’ 한 곡을 꼽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힐링 열풍에 힘입어서인지 자연주의 음악에 관심이 쏠리면서 북유럽 가곡 애호가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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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가곡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성악가 최화숙씨가 사천시 남성합창단원들의 공연 연습을 지휘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북유럽-한국 가곡의 교두보 목표

    북유럽가곡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성악가 최화숙(36)씨는 이 분야에서는 가장 앞 선에 서 있다. 경남예술고등학교·숙명여자대학교 성악과 졸업, 이탈리아 Giuseppe Conte Academi 연주자과정 졸업, 미국 노스텍사스대학 1년간 수학 등을 거친 2010년까지만 해도 국내 여느 성악가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러다 에스토니아로 유학하면서 달라졌다. 2011년 9월, Estonian academy of music and theatre Vocal, lied 석사과정을 입학했다. 어두운 톤의 드라마틱 소프라노인 그녀는 2년 후 우리나라 출신으로선 처음 이 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1호 졸업생일 뿐만 아니라, 실기 만점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졸업연주회 대표의 영광도 차지했다.

    “귀국독창회 때 에스토니아 가곡을 불렀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탈리아, 독일, 미국 가곡에 익숙했던 국내인에게 신선한 느낌을 준 것 같아요. 반대로 에스토니아·핀란드 등 초청독창회에서는 ‘동심초’,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 우리 가곡을 불렀는데 상당한 공감을 얻었어요. 북유럽 가곡 전파자이자 북유럽에 한국 가곡을 파급시키는 교두보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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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남성합창단을 지휘하는 최화숙 성악가.


    최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성악가를 꿈꿨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었던 그녀는 TV에서 본 성악무대가 계기가 됐다. 고향 삼천포에선 레슨을 받기도 어려워 대학생에게서 배웠다. 입시 곡으로 이탈리아 가곡 ‘Sebben crudele(그대 잔인해도)’ 한 곡만 달달 외워 경남예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기초가 약하다 보니 입학 초기에는 열등생으로 분류됐고, 성악을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그때 두 분이 저를 잡아주셨어요. 아버지께서 ‘네가 선택한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도전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대하셨죠. 또 한 분은 양기영 선생님(현 숙명여대 교수)이었는데, 저에게는 헬렌 켈러와 같은 존재였어요. 첫 수업시간 ‘화숙이는 고칠 게 많네’란 말씀에 엉엉 울었어요. 반감에 도발도 했지만, 참고 기다려 주셨죠. 반면 역설적이게도 당시 악명 높은 한 선생님의 덕(?)도 있었어요. ‘너 이번에 몇 등 했어?’란 질문에 ‘못했어요’라고 답했더니, ‘그러니깐 내가 널 기억을 못했구나’란 말에 오기가 생겨 처음부터 제대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죠.”

    성악가로의 터닝포인트는 고 2 때였다. 오페라 아리아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란 곡으로 경험 삼아 나갔던 개천예술제 콩쿠르에서 3등을 차지했다. 실전에 강하다는 자신감은 일취월장하게 했고, 고 3 실기특차 마지막 콩쿠르인 동의대학교 콩쿠르에선 드라마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2등에 입상했다. 예고 꼴찌로 시작해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에게 당시 경남예고 교무부장은 “화숙이는 예고의 존재 이유다. 입학 때 1등이 졸업 때도 1등이 아닌, 꼴찌도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수석이 될 수 있게 하는 학교가 예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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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가곡은 음악시장의 블루칩



    오페라에선 음악과 목소리에 집중하는 반면, 가곡에선 언어와 시에 담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한 나라의 가곡을 부르려면 그 나라 언어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 한다. 따라서 나라·언어별 다양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어 공부가 우선돼야 한다. 아직까지 북유럽 가곡에 정통한 성악가가 적은 이유다.

    "많은 것을 배우고 귀국했지만, 북유럽 가곡의 생소함 때문인지 쉽게 동화되지는 못했어요. 편견에 부닥치기도 했지만, (북유럽 가곡을) 전파하면서 극복해야죠. 반면에 북유럽 가곡을 배우겠다는 중견 성악가들도 꽤 있어요. 독일·이탈리아 가곡이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지만, 북유럽 가곡은 시장성이 충분한 블루칩이예요."

    2014년 제10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오로라의 노래’, 지난 5월 북유럽 가곡의 밤(서울) 등 의미 있는 공연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음악계에서 북유럽 가곡은 아직 시작 단계다. 지역에선 첫걸음조차 못 뗀 상태다. “국내에서는 (북유럽 가곡에 대한) 정보수집이 어려워요. 귀국할 때 가져온 악보 등도 이사하면서 많이 유실돼 조만간 에스토니아에 다녀올 계획이에요. 수집한 곡을 어떻게 나누고 공연을 준비할 건지 고민 중이고요. 경남·부산, 혹은 서부경남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가곡 지역연구회도 결성할 거예요.”

    모교인 숙명여대 외래교수와 경남예고 강사인 최씨는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바쁜 활동을 하고 있다. “제 자신이 워낙 힘들게 성악공부를 한 만큼 과정을 마친 후에는 고향의 음악 저변화에 보탬이 되길 소원했어요. 또 이탈리아 나폴리처럼 아름다운 내 고향 삼천포가 음악의 도시로 전국적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는 소명의식도 가졌어요.” 그녀는 4년 전 삼천포로 귀향해 상대적으로 문화혜택이 적은 남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주고자 사천시남성합창단을 창단하고 지휘를 맡고 있다. 남성합창단을 운영하면서 보여주고 도움받고 다시 베푸는 음악공유 순환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다.

    내년 봄 사천시문화예술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사천시오페라단을 창단하고, 바다사랑 창작동요제 개최로 삼천포를 전국에 알릴 계획이다. 최종 목표는 삼천포 앞바다가 보이는 무대에서 오페라 갈라콘서트 개최다. “모든 계획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저의 네임밸류를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 성악가로 북유럽에서 알려지면, 역으로 한국에서 호평을 받지 않겠어요.”

    정오복 기자 obokj@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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