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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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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박병국 율원정밀 대표

“새 보금자리서 바닥 구르며 좋아하실 때 뿌듯해요”
김해 ‘주거문화를 가꾸는 모임’ 회장 박병국 율원정밀 대표
10년째 집수리 봉사 펼치는 ‘주가모’… 자발적 회비로 자재 구입·대상 선정

  • 기사입력 : 2018-09-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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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개 우리는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물러 산다.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 집에서 먹고, 씻고,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휴식을 한다. 집은 모여 사는 곳(家)이자 세상을 뒤덮는 공간(宇), 더 나아가서는 무한히 펼쳐지는 시간(宙)을 의미한다. 한자어에서도 엿볼 수 있듯 편안(便安)함도 집에서 느낀다. 집을 떠나는 것을 출가라 부르고, 돌아오는 것을 귀가라 이른다. 집을 등지고 나아갈 때는 가출이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 모든 중심에는 집이 있고, 넓게 보면 주거의 질은 곧 삶의 질과도 맞닿아 있다.

    그동안의 경제성장으로 우리 사회 다수의 주거 수준은 크게 향상된 반면 주거 빈곤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됐다. 다수 사람들이 집을 거주와 투기, 혹은 ‘집값 안정’이나 ‘세금폭탄’ 따위의 단어들과 등가의 선상에 놓고 살아가는 시대 속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우리네 이웃 가운데서는 그런 것들이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겨질 이들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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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주가모 박병국 회장이 집수리 100호점을 기념하는 현판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그러한 이들의 낡고 초라한 집을 ‘보금자리’로 바꾸며 아픈 이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08년 창립해 햇수로 10년째 김해 지역에서 독거노인, 조손가정 등 주거 빈곤층의 집을 고치는 봉사활동을 하는 ‘주가모(주거문화를 가꾸는 모임)’ 회원들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들은 ‘몸으로 떼우는’ 사람들이다. 후원회원 80여명, 봉사회원 25명 안팎. 각자가 건축, 전기, 수도 등 주거개선의 전문가인 그들은 자재 조달에서부터 도배와 장판 교체 등 수리의 전 과정을 직접 한다. 그 중심에는 봉사단의 첫 활동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병국(55·율원정밀 대표) 회장이 있다.

    “‘이대로 살다가 고마 죽을란다. 고마 그냥 놔두이소’ 하며 수리를 거부하는 분들을 설득하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낡은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제일 힘드냐’는 첫 질문에 돌아온 박 회장의 답은 의외였다. 주가모는 회원들이 매달 5000원에서 10만원가량 자발적으로 낸 돈으로 집수리에 필요한 자재와 물품을 사고, 사회복지사, 지자체 또는 주변 지인과 단체로부터 수리가 필요한 집을 소개받아 대상을 선정한 뒤 매월 넷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봉사활동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고칠 집을 결정하고, 인건비를 빼더라도 한 채당 수백만원의 돈이 들어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가장 힘든 일은 낡은 집을 고치는 것보다 한 번 다친 아픈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오랜 세월 다친 마음이 방치된 탓에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일부터, 1년에 열 채씩 10년간 100곳의 집을 고치면서 봉사단에 부침이 있는 동안 ‘지붕’과 ‘기둥’ 역할을 한 것도 박 회장이라고 그를 가까이서 본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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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주가모 회원들이 지난 7월 ‘100호점’ 수리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그를 따라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의 ‘주가모 100호점’을 둘러봤다. 지난 7월 말에 고친 집이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해서는 찾아갈 수도 없는, 길이 끊긴 산 중턱의 단독주택이었다. ‘외딴섬’ 같은 이곳은 2년 전 노모를 여의고 혼자서 생활하던 한 할아버지가 전기장판 과열 때문에 불이 난 곳이기도 했다. 오갈 데가 없자 동상동에 원룸을 얻어 생활했던 할아버지는 노모와 함께 오랫동안 살았던 이 집이 생각나 잿더미로 변한 이곳을 찾아 집 주변을 맴돌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웃이 김해시를 통해 도움을 청했고, 주가모의 손길을 거쳐 새집이 됐다. 박 회장은 “이 집을 비롯해 김해에서는 아직도 군불을 지펴 생활하거나 물과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집, 수십년 전 흙벽으로 지어져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들이 많다”며 “처음엔 아예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던 분들이 수리를 끝내고 나면 바닥에 구르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박 회장의 오랜 지인들은 그를 가족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한다. 그는 경북 성주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마을이장이었던 그의 선친은 물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저수지 3곳을 직접 파고, 가가호호 물을 대주느라 정작 집안일에는 소홀했다고 한다. 또 그의 친형은 동남아 오지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고 박누가 선교사다. 지난 1989년부터 필리핀 오지를 돌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해오는 과정에서 위암, 간경화, 당뇨 등을 앓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하면서도 의료봉사를 멈추지 않다 병세가 악화돼 결국 지난달 26일 별세했다.

    박 회장은 형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뜻을 꺾진 못했고, 버스를 개조해 이동식 병원을 만들거나 의료봉사를 위해 큰돈이 들어가는 순간마다 형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똑같이 먹을 것을 받으면 자기 것을 반으로 뚝 잘라 내게 먼저 주고 ‘네 것은 나중에 먹어라’고 했던 형님이었다. 형님을 지켜보고, 또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것 같다”며 “조카가 필리핀 오지에서 계속해서 의료봉사를 이어가기로 한 만큼 안정될 때까지 계속 신경 쓰면서 형님의 뜻을 나도 이어갈 것이다”고 했다. 박 회장에게는 주가모 회장뿐만 아니라 김해여성복지회관 후원이사, 아름다운가게 운영위원 등 여러 직함이 뒤따르고 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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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국 회장이 집 수리 후 써 붙인 글귀를 보고 있다.


    박 회장의 바람은 지금껏 해왔던 대로 부지런히 앞으로도 계속 낡은 집을 고쳐 나가는 것이다. 지역사회 여러 봉사단체와 연대해 더 많은 이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품고 있다.

    “사실 100호점은 좀 더 의미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새로운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 필요로 하는 이들의 낡은 집을 고치며 그들의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150호점, 200호점 때는 집이 없어 전전하는 이웃들을 위해 새로운 집을 한 채 지어줄 수 있도록 더욱 부지런히 돌아다니겠습니다.”

    그와 함께 100호점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 곁눈질로 그의 자가용 주행거리를 봤다. 18만4000㎞가 찍혀 있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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