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마흔 번째 제사 모신 날
자리에 눕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나 죽기 전에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구나 여태껏 한 번도 공들여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 내 생애엔 정말로 엄마를 다시 볼 수 없구나
그것이 죽음이라는 걸, 그 어린 나이가 어찌 알았으랴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나 땅에 묻히기 전에 어머니 얼굴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니
새삼 사무친다, 영영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로션조차도 안 바른 맨 얼굴의 이런 시를 나는 쓴다
‘영영’ 이별이라는 말이 얼마나 슬픈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가 아직 행복을 모르는 사람인가. 이 시의 화자는 ‘영영’이라는 말을 채 인지하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영영’ 이별을 하고 어머니 제사를 마흔 번째 치른 날, 문득 ‘영영’ 이별의 실체와 맞닥뜨린 모양이다. ‘영영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얼마나 무서웠는지/로션조차도 안 바른 맨 얼굴의 이런 시를 나는 쓴다’며 어머니 제삿날 일기를 쓰는 듯 감정을 직설하는 무기교의 기교를 구사하여 ‘영영’이 품은 슬픔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무기교의 기교는 노련한 대목장이 못 자국 하나 없이 나무와 나무를 접목하듯 자연스럽게 시 속의 화자와 독자를 ‘영영’을 무서워하는 한통속으로 묶는다. 사실 이 무서움이 없다면 오늘날 노래도 시도 기념일도 종교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픈(슬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혹한 축복인가!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