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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옻칠의 세계

‘천년의 색’ 전통 옻칠, 현대 ‘옻’ 입다

  • 기사입력 : 2018-09-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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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창원시 동읍 다호리(茶戶里) 고분에서 기원전 2세기 전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옻칠 붓과 부채, 칠기 유물 등 옻칠예술품이 대량 발굴됐다.

    #2. 합천해인사 장경판전에 수장된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에 옻칠을 한 경판은 부식되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다. 옻은 벌레를 쫓고 습기를 막는 성질이 있어 옻의 보존성과 항균성이 뛰어남을 입증했다.

    #3. 통영 나전칠기는 조선시대(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통제영에 12공방을 설치해 상하칠방(패부방)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면서 국내 대표적인 나전칠기 특산지로 알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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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호분 붓. (다호리 고분 칠기유물)



    창원 다호리 유적은 한반도 중·남부를 통틀어 유례 없이 많은 칠기유물이 출토되는 등 한반도 옻칠예술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칠기유물은 옻칠예술사의 시작을 여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옻칠미 연구소 김은경 소장의 ‘다호리 유적 출토 칠기유물에 관한 고찰’ 논문에서 2000년 전 다호리 지역에서 칠기가 성행했으며, 9차까지 발굴한 총 106기 중 50기에서 칠기가 출토돼 중국 옻칠예술의 전성기를 이룬 전국시대 장사(長沙)지역 초나라 무덤 2048기 중 129기에서 나온 칠기와 비교해 다호리 유적은 가히 ‘칠기의 보고’라고 했다.

    이처럼 경남이 고대 옻칠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옻칠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옻칠의 특성, 그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장을 내민 옻칠회화에 대해 ‘한국현대옻칠의 산증인’인 김성수(통영 옻칠미술관) 관장으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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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作 ‘revolution’. (옻칠회화 작품)



    ▲나전칠기의 역사

    선사시대 이래 나무와 토기로 만든 기물에 옻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칠을 하거나 옻칠에 천연안료를 배합해 기물에 칠하는 채화칠기가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승됐다. 고려시대에는 옻칠을 한 기물에 자개 무늬를 장식하는 표현기법인 나전칠기가 발전했고 고려 원종 13년 (1272년)에는 나전칠기 전문 제작 관아인 ‘전함조성도감’이 별도로 설치됐다. 조선시대로 이어진 나전칠기는 끊임없이 전승되면서 국민들이 선호하는 민중예술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나전칠기 공예는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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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作 ‘revolution’. (옻칠회화 작품)



    옻칠을 천직으로 여기고 오로지 나전칠기에만 전념하던 옻칠장인들이 의식주 해결을 위해 귀얄(머리카락으로 만든 옻칠을 칠하는 붓)을 버리면서 전통나전칠기는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정체기를 겪었다.

    옻칠과 나전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나전칠기는 1960년대 고도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값싼 합성 칠인 캐슈(Cashew)가 대량 유입되면서 질적 저하와 함께 1000년을 이어오던 옻칠이 단절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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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효 作 ‘현해’. (옻칠회화 작품)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은 “합성 칠은 옻칠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낸 공업용 재료일 뿐 옻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재료인 옻칠과는 엄연히 다르다. 광택의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보존관리, 그리고 품격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안타까워했다.

    옻칠은 어떤 미술재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칠흑 같은 천연광채와 장식성, 조형성, 조각성 등 미학적 특성과 방수, 방부, 방충, 단열, 항균 작용, 전자파 흡수 등 물리적 특성이 있으며, 이 특성을 살려 옻칠공예, 옻칠장신구, 옻칠회화, 옻칠조소 등 다양한 영역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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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란 作 ‘For you’. (옻칠회화 작품)



    ▲옻칠의 특징

    옻칠은 미학적·재료적 특징으로 나뉜다. 옻칠은 다른 도료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미학적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공예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미학적 특징의 첫째는 칠흑같이 어둡고 흑진주같이 빛나는 광채(光彩)이다. 옻칠을 하고 광내기를 마치면 순박하고 눈부신 표면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광채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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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수 作 ‘le lien sacre’. (옻칠회화 작품)



    둘째는 장식성이다. 옻칠은 금·은 보석과 같은 장식과도 잘 어우러진다. 옻칠공예품을 만드는 기법으로는 옻칠을 한 표면을 연마한 후 자개나 귀중석을 붙이고 다시 칠을 하여 마감을 하는 기법으로 우리나라의 나전칠기에서 옻칠의 장식성과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는 옻칠은 조각미로서 특징이 있다. 조칠 기법으로 만든 중국의 화려한 옻칠공예품들은 조각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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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승 作 ‘일출’. (옻칠회화 작품)



    옻칠의 재료적 특징은 다시 물리적·화학적·약리적 특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옻칠도막은 밀착성이 탁월해 방부성, 방충성, 내구성, 내열성, 내한성, 절연성 등 다른 도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특히 광택을 발산하는 반투명물질로서 여러 겹의 어둠이 퇴적한 듯한 깊이 있는 색감은 ‘칠흑 같은 어둠’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아름답다. 더욱이 사용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광채’와 윤기가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촉감은 옻칠만이 가진 물리적 특징이다. 약리적 특성은 옻나무의 수액이 페놀 계통의 항원(抗原)을 지니고 있어 액체 상태로 있을 때 피부에 닿으면 수포나 알레르기 피부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옻은 항암 등의 약리작용을 인정받아 고급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예부터 머리 염색약으로 사용되었으며, 강장제와 위장·냉대하 등에 효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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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 作 ‘기(器)’. (옻칠공예 작품)



    ▲옻칠과 나전

    칠액 채취는 옻나무의 껍질과 목질 사이의 칠액구에 칼로 흠을 내고 칠액이 흘러나오게 해 주걱으로 긁어서 수집한다. 칠액의 색상은 유백색이지만 상온에 두면 갈색으로 변한다. 채취 시기는 6월 상순부터 180일간 3~4일 간격으로 채취한다. 6~7월 초순에 채취한 칠을 초칠, 7월 중순~8월 중순은 성칠, 8월 하순~9월 하순은 ‘말칠’이라 하며 이후는 ‘과목칠’이라 한다. 이 중 성칠을 가장 좋은 칠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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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과 검집. (다호리 고분 칠기유물)


    칠액에 함유된 수분과 나무껍질 등의 불순물을 걸러서 제거하지 않은 칠을 ‘원생칠’, 여과하여 정제한 칠을 ‘생칠’이라 하는데 생칠을 정제하여 흑칠과 투명칠을 만든다. 이처럼 여러 정제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칠을 ‘옻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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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호분 부채자루. (다호리 고분 칠기유물)



    조개껍데기를 가공해 공예품이나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제품을 ‘자개‘라 하며, 자개로 무늬 또는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끊음질, 줄음질 등의 기법으로 형상화해 물체에 부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을 ‘나전(螺鈿)’이라 한다. 나전을 옻칠한 기물에 부착시키고 제작공정에 따라 옻칠을 하여 완성한 기물을 ‘나전칠기’라 한다. 옻칠예술은 옻칠과 자개를 전통적으로 사용한 기법과 제작과정을 활용해 공예, 회화, 조각, 장신구, 그리고 오브제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 창작하는 옻칠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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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경 作 옻칠장신구. (옻칠공예 작품)



    ▲미래를 여는 새로운 영역의 옻칠회화

    옻칠회화는 옻칠로 작품 활동을 해 온 일부 작가들이 전통 옻칠 공예품 제작기술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회화에 적용시켜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회화작품이다. 이들 작가들이 작품 제작에 이용한 표현기법은 채화칠기와 나전칠기에 기반을 두고 옻칠을 사용해 표현한 것으로 나전칠기 공예품에 사용되던 금속, 자개, 옻칠 등을 회화재료로 사용했다.

    또한 오랫동안 사용할수록 더욱 광택을 발하는 광채와 윤기가 흐르듯 부드러운 촉감을 갖고 있는 옻칠만의 물리적·미학적 특성을 살리고 옻칠회화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던 유리 액자를 없애고 옻칠목태캔버스를 창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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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형칠두. (다호리 고분 칠기유물)



    이런 의미에서 2011년 7월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열린 ‘김성수 옻칠세계 60년 기념, 다시 찾은 한국 옻칠 80인전’은 공예미술로 한정해온 옻칠의 표현영역을 순수회화로 넓히는 계기가 됐다. 전시는 전통공예로서 옻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련의 새로운 미적 가치 실현을 위한 미술운동으로 전개됐다.

    김 관장은 “현대회화에 옻칠이라는 재료를 적용함으로써 전통의 그늘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공간, 즉 실생활에 보다 가까이 밀착시킨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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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관 作 ‘백매화관복함’. (옻칠공예 작품)



    옻칠을 사용하는 옻칠회화와 유화는 개념상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그림을 그리는 재료와 도구가 다를 뿐이다. 유화는 주로 천으로 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지만, 옻칠회화는 나무로 제작한 백골에 나전칠기 제작공정대로 옻칠을 한 옻칠목태캔버스 위에 나전을 먼저 시문하고 옻칠로 그림을 그린다. 다시말해 옻칠로 베 바르기를 한 후 면이 고르게 될 때까지 반복하여 칠을 하고 그 위에 옻칠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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