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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사격장 기념비 백발백중(百發百中) 비화- 허환구(창원시 시민갈등관리위원장)

  • 기사입력 : 2018-09-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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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공식일정이 내일이면 끝난다. 대회에는 91개국 4300명에다 북한 선수단 22명이 참가해 핫 이벤트가 됐다. 경기장을 가보면 관전 분위기도 관람객 중심으로 달라졌다. 세계 최고의 시설, 장비, 시스템, 경기진행, 자원봉사 등 완벽하다고 느꼈다. 자랑스런 창원의 현주소다.

    무적해병의 훈련장이었던 정병산 자락에 위치한 창원사격장, 입구에 선 ‘백발백중(百發百中)’ 기념비가 35년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새삼스런 일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이 기념비에 얽힌 비화를 공개하고자 한다. 사격장은 1982년 10월에 개최된 제63회 전국체육대회에 즈음해 건설된 것이다. 16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국내외 출향 도민들의 성금이 답지했는데, 재일 경남도민회에서 무려 9억원에 가까운 성금을 보내왔다. 현 시가로 환산하면 100억원은 족히 되는 거금이다. 이분들을 체전 개회식에 초청했고 500여명이 참관해 대성황을 이뤘다.

    고국을 떠난 지 40여년 만에 찾은 재일동포들 그리고 2, 3세까지 참관한 감동의 물결이었다. 다음 해 4월 식목일 행사에는 재일 동포 식수단원 400여명이 참가했고, 이때에 체전 성금 상징 기념물 건립 장소를 사격장으로 정하고 기념비를 제막하기로 했다. 기념비는 키가 2m를 훌쩍 넘는다. 빼어난 자연석에 ‘百發百中’이 음각돼 있다. 세련된 도지사의 필체가 의미심장하게 압도하고 있다. 문제는 기념비 뒷면에 주먹 크기로 ‘경상남도지사 000’라고 각인돼 있었다. 물론 백발백중이라는 제자(題字)를 쓴 자격이었다. 아마도 천년은 버틸 수 있을 느낌으로 음각돼 있었다. 반면 좌대 뒷면에 부착된 오석에는 성금을 기탁한 재일동포들의 명단이 도민회별로 자그맣게 한글로 새겨져 있었다. 너무나 대조적이고, 상대적으로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에 분노가 엄습했다.

    일본에서의 학대도 지긋지긋한데 도지사 한 번 만나면 감격하는 그들에게, 도지사가 자기 이름을 앞세우고 이들을 무시하는 처사는 오만, 교만, 독선의 형태가 아니고 뭣이겠나.

    어떻게 번 돈인데, 그들을 서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재일도민회 회장단을 현장으로 모셔서 기념비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며 노발대발했다.

    도지사 이름을 파내지 않으면 제막식을 취소하자는 결론을 갖고, 도지사를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때서야 심상찮은 사태를 파악하고 부랴부랴 ‘경남도지사 000’이라는 아홉 글자를 지웠다. 상처로 얼룩진 기념비가 됐다. 위기일발의 제막식을 무사히 마치면서 재일동포 분들의 자존감을 지켜 주었다는 데 안도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서슬 퍼렀던 그 시절, 아찔하고 무모한 짓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사격대회를 관전하고 내려오면서 그때 남긴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영원히 남아 있는 그 기념비 상흔은 갑질 행정이 남긴 흔적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크다면 큰 얼룩진 비화, 혼자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쉽다.

    허환구 (창원시 시민갈등관리위원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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