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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남해 황칠나무 연구가 이나미 씨

“나무나 사람이나 시련 없는 성과는 없답니다”

  • 기사입력 : 2018-09-1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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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일 남해군 고현면사무소를 지나 마을 안쪽으로 향하는 길. 산 중턱으로 계속 올라가자 황칠나무 농장이 보인다.

    주로 남부와 제주도의 청정지역에 분포하는 황칠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농장에는 작은 묘목과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었다. 농장 한편 움막에서 황칠나무 연구가 이나미(57)씨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는 황칠나무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또 그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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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미 황칠나무 연구가가 남해군 고현면의 황칠나무 농장에서 3년 된 황칠나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IMF로 기운 가정

    “잘나가던 은행 일을 그만뒀는데 IMF가 터질 줄 몰랐죠.” 그가 양산에서 남해에 온 것은 1998년 무렵, 그의 표현에 따르면 ‘폭삭 망하기’ 전까지 이씨는 남부러울 게 없었다. 남편 김용준(60)씨는 부산에서 식품기계 제조 공장을 운영했고, 이씨는 은행원으로 그의 가족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남해에 내려오기 1년 전 이씨는 17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직장에서 그의 사직서를 만류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당시에 대해 이씨는 “남편 사업도 잘돼 풍족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둬도 된다고 생각했다”며 “닥쳐올 일을 몰랐다”고 회상했다.

    일을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벼락이 떨어졌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IMF 여파는 이씨의 가정에도 휘몰아쳤다. 빚을 청산하기 위한 경매 등으로 순식간에 전 재산이 날아갔다.

    “당시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유치원생이었는데 당장 아이들부터 눈에 밟히더군요. 아파트까지 처분하고 친정인 남해로 무작정 내려갔어요.”

    친정의 사정도 좋은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씨는 “막상 내려와보니 한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남편은 사업 실패로 인한 충격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가 깨졌고 누구를 만난다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마냥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다시 남해의 한 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했고, 남편도 지인의 일을 도와 일감이 들어올 때마다 식품기계 제조 일을 했다. 이씨는 “자녀에 대한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생활해야 했고, 계약직의 은행일을 그만둔 후 학교 상담교사로도 일했다”며 “IMF로 빈털터리가 되면서 돈은 돌고 도는 것이지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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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으로 선택한 황칠나무

    이씨는 남해에 내려오면서 자녀에 대한 뒷바라지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자신만의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외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셨는데 어깨너머로 약재에 대해 배운 게 있었죠.”

    약용작물로 선택한 것은 황칠나무. 무작정 황칠나무로 유명한 전남 보길도로 찾아가 묘목 3500그루를 사왔다. 이씨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대부분 말라 죽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황칠나무에 대한 재배 표준서가 없었고 관련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며 “식재할 땅이 모자란데도 좁은 면적에 많이 심기만 했다”고 말했다.

    첫 도전은 무모했지만 재도전을 위해 그는 경상대 평생교육원에서 약용식물을 공부하고 이듬해에는 임업기술교육정부센터에서 재배기술 등을 공부했다. 남편 김씨의 도움도 컸다. 김씨 또한 식품기계 제조 일을 하면서도 백방으로 관련 서적을 찾아다니며 부부는 공부하고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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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미 황칠나무 연구가가 남해군 고현면의 황칠나무 농장에서 3년 된 황칠나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점차 공부와 연구로 재배기술이 늘면서 황칠나무는 점점 늘기 시작했다. 약 330㎡ 면적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현재는 3만9600㎡ 면적으로 늘었다. 황칠나무를 비롯해 땅두릎, 비파나무, 산양산삼 등도 경작하고 있다. 하지만 몇 해 전에는 냉해로, 올해는 폭염으로 황칠나무 묘목이 다량 죽기도 하는 등 시련은 간간이 찾아왔다. 이씨는 담담했다.

    그는 “예전 같았으면 크게 상심했을 텐데 몇 번 겪고 나니 자연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주어진 조건에서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했다.

    경남산림환경연구원은 이씨의 농장을 황칠나무 채종원으로 지정했다. 채종원은 형질이 우수한 종자생산 공급원으로 채종원 지정은 황칠나무 품질의 우수성을 공인받는 것이다. 이씨는 황칠나무의 보급에 앞장선 공로로 지난해 산림조합중앙회로부터 임업인상을, 올해 초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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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가장 큰 힘

    이씨의 황칠나무 공부를 돕던 남편 김씨도 황칠나무에 빠졌다. 부부는 같이 농장을 운영하면서도 서로 전문가를 자처한다. 부부가 황칠나무에 빠지면서 크게 달라진 점은 금실이 더욱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남편이 사업이 번창할 때는 서로 며칠씩 얼굴을 못 볼 때도 많았다”며 “지금은 농장을 비울 수 없어 늘 ‘껌’처럼 붙어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황칠나무 연구와 농장 경영은 부부의 천직이다. 이씨는 “바닥을 치고 일어나니 돈이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었다”며 “남부럽지 않던 그때보다도 지금 이렇게 남편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황칠나무는 과거에는 주로 전통도료로 알려졌지만 혈액순환 개선, 혈압 조절, 숙취 해소, 면역력 강화 등 다양한 효능이 알려지면서 약재, 음식 등에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황칠나무는 중국 등에서도 번식할 수는 있지만 유독 그 약성은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황칠나무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의 바람은 황칠나무 제품을 좀 더 고급화하고 종류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그는 “황칠나무의 이로움이 여전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접하도록 하고 싶다”며 “외국에도 황칠나무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목표이다”고 말했다.

    이씨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황칠나무에 맺힌 수액을 가리켰다.

    “나무가 정말 잘 자라면 수액이 잘 안 맺혀요. 어느 정도 시련을 겪어야 스스로 수액을 내뿜거든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시련 없는 성과는 없어요.”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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