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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봉암수원지 길을 걷다- 조재영(시인)

  • 기사입력 : 2018-09-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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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은 길이 있다. 가족들과 오랜 벗들과 도란도란 걸으며 정을 나누고 싶은 길이다. 언제부턴가 봉암수원지 둘레길이 그런 곳으로 다가왔다.

    백석 시인은 언젠가 창원의 길을 걸으며 ‘창원도(昌原道)’라는 시를 남겼다.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주고 싶은 산허리의 길은 //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히고 싶은 길이다 // 개 데리고 호이호이 휘파람 불며 /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백석 ‘창원도’ 중 일부-

    수원지 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시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산책길에 조성된 ‘자연과 함께하는 시가 있는 수원지’ 때문일 것이다. 수원지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로 조성된 ‘시가 있는 수원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산책과 사색은 서로 이웃이고, 사색과 시는 친구와도 같다. 깊은 사색은 골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호흡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리라.

    봉암수원지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몇 번인가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었다. 길가로는 잡풀이 많았고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후 많은 정성을 들여 수원지 길이 정비된 이후 이곳은 가장 걷고 싶은 길이 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7월 이달의 추천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길은 넓고 평온해서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다. 좁고 굴곡이 많은 길을 걸으며 맞은편에서 오는 상대방들을 비껴주어야 하는 불편이 없는 까닭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차례로 ‘간판 없는 거리’(윤동주), ‘청포도’(이육사), ‘별을 쳐다보면’(노천명), ‘산에서 온 새’(정지용), ‘두견새’(한용운), ‘나의 꿈’(한용운)을 읽을 수 있다.

    “당신의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 다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한용운 ‘나의 꿈’ 중 일부-

    한용운 시인의 시를 소리내어 읽고 걷다 보면 어느새 저수지 아래에 이른다. 이곳에는 사철 얼음같이 차디찬 물이 흐르는 족욕탕이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 수원지는 1928년 착공 당시 인구 3만 명과 계획급수 인구 6만 명을 위한 저수용량 40만t 규모로 1930년 5월에 준공되었다.

    이렇게 역사가 깊은 곳이지만 정작 창원의 문인들이 이곳을 소재로 글을 쓴 사람은 드물다. 문인들의 외면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언젠가 수원지 산책길에서 우리 지역 문인들의 글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산으로 향한 많은 길들의 끝은 정상으로 향한다. 그곳이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팍팍한 흙먼지와 바윗돌, 갈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수원지는 전혀 뜻밖의 선물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꿈결인 듯 맑게 출렁이는 물이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식당은 다시 찾게 된다. 가끔 마음에 가뭄이 든 날이면 봉암수원지라는 오아시스가 떠오른다. 가족들과 오랜 벗들과 단골 식당을 찾듯 도란도란 이곳을 찾고 싶다.

    조 재 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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