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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경남 예술인 복지 어디까지 왔나

예술인복지법 시행 7년째… ‘예술인 실태조사’조차 못하는 경남

  • 기사입력 : 2018-09-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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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1년 빈곤에 허덕이다 세상을 떠난 한 예술인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다.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예술인 복지 지원을 통해 창작활동을 증진하는 것이 제정 목적이다. 복지법의 일환으로 정부는 예술인 고용보험과 예술인 복지금고 등을 도입하거나 추진 중이다.

    그러나 법 시행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역 예술계의 실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현장에 나가보면 예술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여전히 배고프다며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특히 지자체의 경우 예술인 복지에 대한 정책이 미미하고 예산도 많지 않다. 정부의 예술인 복지 정책 방향과 경남의 현황, 과제 등에 대해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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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제3아파트 공장 내 문화대장간 풀무에 개소한 경남 예술인지원센터./경남신문DB/



    ◆정부의 정책 방향

    예술인복지법은 지난 2011년 11월 제정돼 2012년 11월부터 시행 중이다. ‘예술’을 직업으로 인식하고 복지법을 마련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국가가 예술에 대한 사회공공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주체인 예술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을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시책 수립·시행에 대한 의무를 부여하고, 복지에 대한 예산지원 근거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정부는 2012년 공공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해 예술인의 사회보장 확대와 직업안정·고용창출 지원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으로 예술인 복지가 정책으로 제도화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실효성과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월 16일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이라는 새 예술정책 비전을 내놓았다. 예술인의 삶을 기본으로 살펴보고, 그로부터 정책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핵심은 구휼이 아니라 예술인들의 지위와 그 예술을 업으로 정상적인 삶이 보장돼 인간다운 생활과 문화예술의 가치를 정상화시킨다는 인식 전환을 전제로 예술인 복지정책 전반을 재편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수도권 중심의 정책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역문화진흥법 시행과 함께 문화 분권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지만 지역 예술인의 복지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현재 예술인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의 4분의 3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비 250억원 가운데 창작지원금지원 120억원의 76%가 서울과 경기지역에 집중돼 있고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77억원도 서울·경기에 81%가 배정돼 있다. 지역예술인 소외는 곧 활동 실적이나 수입과 연계되므로 예술인 활동이 수도권에 밀집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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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지자체 사례 소개

    부산광역시는 국내 지자체 가운데 비교적 예술인 복지에 선진적으로 대응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부산시는 2013년 10월 ‘부산광역시 예술인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부산예술인복지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전국 최초로 지역센터를 설립한 부산시는 시비 10억원을 확보해 예술인 복지사업 추진을 위한 거점 공간화와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빈집을 예술 공간으로 활용해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반딧불이 창작공간 사업’과 예술인과 기업의 협업을 통해 지역 예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예술인 일자리 박람회’ 개최, 예술인 일자리 파견지원사업 등에 주력하고 있다. 또 감정 소모가 많은 예술인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인 ‘휴-안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황해순 전 부산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은 “지역 예술인들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만들어 건강한 지역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전라북도는 2016년 여름께 예술인복지 필요성을 인지하고 9월에 ‘전라북도 예술인복지증진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는 5개년 단위의 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보장, 창작여건 개선이 중심이다. 정책 가운데 ‘예술인 특례보증 지원사업’이 눈에 띈다. 예술인활동증명 발급자 가운데 창작자와 실연자 또는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은 지 3개월이 경과된 예술인이 지원 대상으로 작업실 임대료, 공연준비금 등 창작활동 관련 비용 대출을 보증해주는 제도다. 2017년 2건(3500만원), 2018년 3건(7000만원)으로 실적은 미미하지만 보완 후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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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2일 경남발전연구원에서 열린 ‘예술인 복지 증진, 어떻게 할 것인가?’ 정책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경남의 현주소

    경남에는 관련 정책이나 예산이 거의 없어 지역 예술인들에게 다른 지자체 복지정책은 부럽기만 하다. 모든 정책의 근간이 되는 실태조사부터 한참 뒤처져 있다. 2012년 경남문화재단이 시행한 ‘경남 문화예술인 실태조사’가 가장 최근에 나온 자료다. 6년 전 자료를 살펴보면 문화예술인은 경제적 보상에 대해 48.5%가 ‘매우 낮다’, ‘다소 낮다’가 36.9%로 85%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전 분야 표본의 개인별 월평균 소득은 186.4만원으로 100만원 이하가 17.7%, 없음이 16.5%로 조사됐다. 경남 예술인들이 경제적, 사회적 인식이 낮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8월 22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한 예술인 복지 증진, 어떻게 할 것인가?’ 정책세미나 참석자들도 정책을 수립하려면 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황해순 전 부산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은 “부산시는 2015년 조례로 지정해 3년마다 한 번씩 조사하는데 경남은 2012년 이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놀랐다”며 “경남은 특히 도농간 격차가 큰 지역이어서 면밀하고 촘촘한 조사는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경남이 시행한 대표적 예술인 복지정책은 지난 3월 문을 연 ‘예술인지원센터’ 설립이다. 도내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들의 각종 민원 상담과 보조금 업무 지원을 위해 개소한 이곳은 창원시 팔룡동 제3아파트 공장 내 문화대장간 풀무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11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청사 합천 이전에 따른 불편을 해소하고 소통 확대를 위해 전담인력을 배치했다. 그러나 e-나라도움(국고 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과 NCAS(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 상담업무, 각종 사업과 예술인들의 민원을 담당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관계자는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전화와 방문을 포함해 4800여건의 업무를 진행했다”며 “사실상 올해는 자체적으로 전담인력 두 명의 인건비 정도만 예산 편성해 운영하고 있고 경남도에서 관련사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을 확보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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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와 전망

    지자체의 문화예술인 복지증진 역할에 대한 법적 토대는 마련됐다. 그러나 경남엔 관련 조례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역 예술계에서는 낙후된 문화예술 복지정책에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올해 경남도가 발표한 새로운 경남 4개년 계획 문화예술정책을 보면 ‘문화기본권 보장’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저금리 예술 활동 자금대출 지원사업인 ‘그라민 금고’가 있다. 이 밖에도 장착공간 지원 조례 제정과 예술인복지센터 설립, 예술인임대주택과 예술인 마을 등이 들어 있다.

    예술인 A씨는 “예술인증명을 완료한 지 꽤 됐지만 혜택은 딱히 없다”며 “생색내기용이 아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술인 B씨는 “다른 지자체에서 성공한 정책을 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예술인이 자생력을 갖고 성장해 새로운 예술인이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경남도는 내년에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김경영 경남도의원은 정책세미나 토론문에서 “경남도는 문화역량강화사업 635억1500만원, 문화기본권 보장에 191억8500만원을 조성하는 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사업들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지역 단위의 실행 방안과 제도화를 추진하고 한편으로 문화예술인들의 복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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