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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후의 삶- 주선화(시인)

  • 기사입력 : 2018-08-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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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지 2년 남짓, 한 번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박진성 시인의 ‘이후의 삶(B612북스 출판, 2018, 5)’을 읽으며 재미로 던진 돌멩이 하나가 얼마나 한 사람의 삶을 처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목도했다. 그리고 사실 관계조차 하지 않은 언론사의 횡포가 얼마나 피해자를 절망케 하는지도 목격했다.

    ‘이후의 삶’ 저자 박진성은 시인이다. 어느 날 한 신문에 박진성 시인의 ‘미성년자 제자를 수년간 상습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연일 문단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불미스런 행동들로 인해 그야말로 문단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울 때여서 그 파장은 훨씬 컸다.

    하지만 박진성 시인은 긴 법정싸움 끝에 2018년 7월 마침내 무죄선고를 받았고 최초 허위 보도를 한 언론사로부터 정정보도와 사과문 그리고 5000만 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자신을 사랑해주던 독자들의 돌팔매와 동료 시인들의 외면 그리고 언론사의 허위보도로 인한 지치고 힘든 싸움,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절망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이후의 삶’을 통해 시인은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같이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고맙고 감사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견디며 정의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작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신문이나 방송이 전해주는 대로 그것이 팩트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대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무엇을 진실이라 믿어야 할지 또한 사실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혼돈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2016년 10월 20일,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그날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삶이 막상 우리에게 닥친다면 우리는 그날 이후 어떻게 될까.

    “제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유는 그저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트위트에 중독되어 있었고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장난 삼아 트위트에 폭로했는데 일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렸습니다. 제발 고소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그 글을 아무런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언론에 게재해버린 이 기막힌 상황들. 시인은 그날 이후, 세상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조용히 글 쓰는 일과 조용히 걷는 일을 좋아합니다. 창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새벽을 좋아합니다. 물끄러미, 가만히, 몰래, 이런 단어들을 좋아합니다. 우연을 좋아합니다. 조리돌림을 싫어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후의 삶을 응원합니다.”(‘이후의 삶’ 중에서)

    박진성 시인을 응원합니다. 미투뿐만 아니라 세상의 억울한 모든 피해자들을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주선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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