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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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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전북 군산

시간이 멈춘 곳에서 근대역사와 마주하다
구시가지엔 적산가옥 등 근대건축물 곳곳에 남아 있어
풍경과 함께 사진 찍기 좋아

  • 기사입력 : 2018-08-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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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가 된 폐건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어디로 갈 것인가? 결론은 늘 하나다. 여기만 아니면 돼. 오랜 시간 머물며 친숙하고 지겨워진 풍경과 사람들. 반복되는 일상, 감흥 없는 도시를 도망치고픈 마음에 낯선 곳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떠돌며 몸을 혹사하고 결국엔 집으로 돌아온다. 몇 장의 사진과 망가진 피부만을 남기고. 그런데도 또 짐을 싸는 건 나란 인간의 천성인가 보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내가 주도한 여행이 아니다. 떠나가는 친구의 동행 제안을 받아들여 가게 된 여행. 목적지는 군산이다. 타인이 설계한 여행에 얹혀 가는 건이라서 편리하다. 어디로 가고, 먹고 자고 등의 일을 무책임하게 맡기면 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짐만 들고 집을 나섰다. 폭염에서 지켜주던 에어컨과 아쉬운 이별 길이다. 합성동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체크카드를 챙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며 날 향해 욕했다. 생각 없이 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런 짓을 벌일 수가 있을까? 그냥 걷기만 해도 말라버릴 날씨에 헛걸음하고 있다. 가벼운 캐리어에 작은 가방과 무거운 필름카메라를 들고서.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한 여행길이다. 아니 땀으로 도배된 고행길이다. 합성동에서 내려 버스터미널로 걷는 짧은 시간에 또 땀이 흐른다. 얼굴, 팔다리는 따가운 햇빛에 타들어 가는데 등, 허리는 축축이 젖어가는 끔찍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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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마주한 건물.

    군산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3대뿐이다. 그마저도 전주, 익산을 거쳐 군산에 도착한다. 무려 4시간의 이동. 서울에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같은 투정을 하며 탄 버스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다들 전주로 가는 건가? 그러고 보니 유난히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이 더위에도 커플은 전주를 가는구나. 따위의 영양가 없는 생각을 반복하며 군산행 버스는 출발했다. 날이 더워서인지, 버스의 노후화인지 냉방시스템은 약하다. 버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래 듣기뿐이다. 그렇게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전주. 버스로 전주에 온 것은 처음이다.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서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아, 내가 지금 창원을 떠나왔구나!’라는 걸 실감한다. 전주 터미널에 도착하고 커플 대부분이 내린다.

    여기서 재미난 일이 발생했다. 버스 기사님이 군산으로 가시는 분은 옆 버스를 타라고 하신다. 옆의 버스는 전주에서 군산으로 가는 직행버스다. 내가 타고 있던 버스는 익산을 거쳐 군산으로 가는 버스인데 이런 매력적인 제안이라니. 버스를 갈아타면 이동시간이 30분가량 줄어든다. 기쁘게 옆 버스에 옮겨탄다. 새로운 버스는 전주에서 출발한다. 기분도 좋고 군산으로 가는 길은 더 매력적이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나 지방도 같은 길을 달린다. 옆으론 상투적인 표현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청록빛의 벼가 격자무늬로 수놓아진 논은 그 자체로 어떤 숭고함이 느껴진다. 여기가 우리나라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 멀리 완만한 산등성이만 보일 뿐 넓은 곡창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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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가는 길목서 만난 ‘호남평야’.

    창밖의 풍광에 취해, 귓가에 퍼지는 음악에 취해 군산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리자 반겨주는 찜질방 같은 거리에 이전의 설렘이나 흥미가 말라버린다. 바삐 택시를 타고 예약된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군산은 3년 전에 왔던 군산과 달라져 있었다. 특히 숙소. 이전 여행 당시 군산 구시가지엔 게스트하우스가 2, 3개 업체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자릿수의 업체들이 있다. 길거리의 빈집들은 수리돼 카페, 식당, 편집숍 등으로 변해 있다. 군산시가 이 일대의 관광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 효과가 몇 년 사이 빛을 보게 된 걸까?

    체크인하며 사장님은 주변 맛집리스트와 관광지를 알려주셨다. 특히 고군산대교와 주변 대교가 올해 완전히 개통되어서 군도를 차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전 여행에선 배를 타고 가야 해서 포기했던 선유도다. 몇 년 사이에 이런 변화라니 꼭 가야지. 이 섬은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으로, 선유봉의 형태가 신선이 바둑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선유도라 불린다. 차를 가지고 오는 일행과 함께 가는 거로 미루고 방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은혜로운 햇빛과 짐들에 고통받던 육신이 에어컨의 은총 아래 살아난다. 뒹굴뒹굴 침대에 쓰러져 관광안내도를 읽어본다. 선유도와 외곽에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이미 방문했던 곳이다.

    오늘의 일정은 군산에 무사 도착이 전부다. 일행도 탈 없이 도착했으니 사장님이 추천하신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별생각 없이 지도를 보며 도착한 식당은 ‘빈해원’이다. 여기 유명한 식당인데. 한번 가야지 했지만 이렇게 오게 될 줄이야. 길에서 주운 돌이 알고 보니 보석이었다는 B급 영화 같은 전개다. 관객으로서 개연성 없는 전개에 분노하겠지만, 내가 그 주인공이라면 나름 재밌는 이야기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건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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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골목길과 영화건강원.

    문을 열고 마주한 모습은 여느 노포와 비슷하다. 그러나 빈해원의 진짜 모습은 하나의 문을 더 지나서다. 높은 천장과 1, 2층이 개방된 화려한 공간은 밖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커다란 기둥들과 이국적인 등, 여기저기 붙은 중화풍 소품들까지. 근대 중국의 식당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내부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 여기가 영화 ‘타짜’에서 불법 도박장으로 나온 곳이다. 사각, 원형 테이블 위엔 숫자들이 적혀 있고, 햇빛 아래 세월의 흔적은 영화의 모습과 묘하게 달라 색다른 느낌이다.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빈해원은 최근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자, 근대 화교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됐다. 빈해원 외에도 시간을 품고 역사가 된 건물들이 유난히 군산에 많이 있다. 군산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구시가지를 추천하는 이유이다. 거리에 늘어선 적산가옥과 역사를 간직한 거리는 사진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주변에 높은 건물도 드물어서 하늘과 함께 군산의 한순간을 담기에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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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서 가장 오래된 식당 ‘빈해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많이 빠졌다. 근대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어쨌든 여기는 식당이고 유명한 메뉴는 ‘물짜장’이다. 물짜장은 전북지역에만 있는 지역 음식이다. 이름과 달리 짜장면이 아니라 중식 면에 해물 소스를 얹은 음식이다. 평가는 호불호가 많이 나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삼선 간짜장을 시켰다. 음식, 특히 낯선 음식엔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다. 소중한 한 끼 식사를 불확실한 것에 걸 수는 없다. 남이 사주는 것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삼선 간짜장은 보통의 맛이었다. 개인적으로 빈해원은 음식보단 건물과 역사의 가치가 큰 식당이라는 생각이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한다. 어둠이 깔린 거리엔 해가 남긴 잔재가 짙게 배어 있다. 시간을 품고 멈춰버린 곳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것이 교차하는 거리. 어둠은 공평하게 내려앉았다. 불을 밝히는 것은 소수의 술집과 다수의 편의점뿐.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한다. ‘이미 땀에 젖어 버린 몸. 조금만 더 쓰고 들어가자’라는 생각으로 걷는 길에는 열대야가 자리했다. 잠깐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더위의 무서움이라.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적당히 먹은 더위에 장시간의 이동, 무사태평한 사건을 씻어내고 침대에 눕는다. 낯선 곳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는 건 오랜만이다. 기간이나 횟수를 정해서 여행을 다니는 건 아니지만 최근엔 게을렀다. 창원에 주저앉아 일상에 매몰되었던 건가. 결국, 다시 떠나왔으니 상관없나. 내일은 늦잠을 자야겠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안 움직이고 에어컨이랑 노닥거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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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사진관.

    ① 초원사진관 앞은 늘 사람들이 많다. 매직아워에서 해가 지는 시간을 노리자. 저녁엔 사람도 없고 조명 아래 색다른 모습을 담을 수 있다.

    ②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산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3대다. 08시, 13시 40분, 15시 40분.

    ③ 군산 구시가지는 격자무늬의 계획도시이다. 관광안내책자를 보고 걸으면 길치도 길을 찾을 수 있다.

    ④ 적산가옥을 테마로 한 카페가 많다. 이국적인 인생샷을 찍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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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훈
    △ 1991년 창원 출생
    △ 창원대 세무학과 졸업
    △ 산책·음악·사진을 좋아하는 취업 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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