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8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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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지혜 담긴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고?

■ 한의학의 정의와 의미
인간의 생리·병리 등을 기반으로 치료하는 학문
한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과학과 철학 녹아 있어

  • 기사입력 : 2018-08-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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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의학은 과학이다.’ 오랜 연구의 결과로 내려진 결론이다.

    그럼에도 때론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라고 평가절하되고 심지어 비하되기도 한다. 그러면 왜 ‘과학적’인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고 폄하되는가? 이는 ‘과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우선 과학의 정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과학이란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자연의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해석해 일정한 지식 체계를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즉, 과학은 탐구과정과 과학지식을 포함한 의미다.’

    또 다른 정의를 보면, ‘과학이란 실험과 같이 검증된 방법으로 얻어낸 자연계에 관한 체계적 지식 체계’라고 돼 있다. 과학의 정의를 몇 마디로 단정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핵심적인 몇 가지 단어들의 조합으로 정리해 보면 ‘자연의 원리’, ‘자연의 법칙’, ‘실험’, ‘검증’, ‘논리’, ‘지식체계’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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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그 사이에 가지고 있던 ‘과학’의 이미지와 동일한 단어들인가? 혹시 우리 사회에서는 그 사이에 ‘과학은 참이며, 비과학은 거짓이다’라는 잘못된 논리로 ‘과학’이 이해되었던 것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과학은 참이며, 비과학은 거짓이다’라는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은 자연현상인 자연의 원리나 법칙을 가설과 검증으로 인식하고 확인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이다’라는 가설과 검증의 과정이다. 즉, ‘과학은 객관성과 재현성을 담보하기 위한 과정인 가설과 검증의 지식체계’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라는 천동설과 ‘지구가 태양을 돈다’라는 지동설 중 어느 지식을 지지하는가? ‘뭐야. 당연히 지구가 태양을 돌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여러 과정을 거쳐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기간 주기로 공전한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기에 ‘지동설’을 당연함으로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대변혁의 관점 변화를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 할 정도인데, 그렇다면 과연 ‘천동설을 믿었던 사람들은 다 모두 비과학적인가?’라는 물음을 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보다 더 많은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인슈타인보다 더 과학적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답을 가지고 있을까?

    ‘선인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우리는 과학적인가? 아니면 미래의 세대보다 아니, 당장 어린아이들보다 적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어른은 비과학적인가?’라는 단순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이렇게 과학은 ‘가설-검증’을 거치는 과정의 학문이지, ‘특정 지식’의 결과 학문이 아니다.

    즉 과학은 그 자체가 ‘참과 거짓’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은 ‘참과 거짓’을 ‘실험과 검증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가지는 과학의 잘못된 정의는 ‘과학은 참, 비과학은 거짓’이다. 만약 우리 사회의 잘못된 ‘참과 거짓’의 논리로 과학을 정의한다면 ‘한의학은 참이고, 기존 의학은 거짓’이기에 오히려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져야 한다. ‘한의약의 패러다임은 참이기에 과학이다. 기존 의학의 패러다임은 거짓이기에 비과학이다’라고.

    여러분은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조물주는 우주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 인간이라는 생명을 탄생시켰다. 지구라는 공간에 인류가 유인원으로 등장하고, 현생인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쳐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까지 많은 발전을 이뤘다.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인간이 동일할까?

    철학적 의미에서의 인간과 과학적 측면에서의 인간은 동일하지는 않을 듯하다.

    이론과 실천, 합리와 경험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가지고, 다시금 과학적 명제화시키는 과정은 시대마다 있었다. 그러한 과정이 그 시대의 철학이었으며, 그 시대의 과학이었다.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에 대한 이해는 인류의 발달과 더불어 그 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점차적으로 확장되고 정밀해져 신의 영역까지 도전해가겠지만, 영원히 블랙박스처럼 알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게 될 것 같다.

    이러한 ‘블랙박스의 인간 몸과 마음, 영혼’을 한의학은 그 시대의 철학과 그 시대의 과학으로 이론화하고 실천화했다. 즉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은 블랙박스이며. 한의학은 그 블랙박스를 논하는 시대의 철학과 과학이다.’

    다만 현대의 철학과 과학으로 재해석되어 ‘인간 몸과 마음, 영혼의 블랙박스’를 새롭게 한의학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한계에 봉착해 근세, 중세, 근세의 철학과 과학으로 고착화되는 듯하다. 더구나 현대 의료 측정기를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재해석되지 못하는 한의학과 한의약의 이론과 실천은, 고루한 의학으로 치부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게는 좀 더 나은 삶의 양과 질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너무도 큰 아쉬움이다.

    과학은 ‘과정’의 학문이지 ‘결과’의 학문이 아니다. 물론 철학도 ‘과정’의 학문이지 ‘결과’의 학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거나 ‘한의학은 미신이다’라고 폄하하는 이는 ‘과학’과 ‘철학’의 정의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만능 과학주의’의 모순에 빠져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한의학은 조상의 지혜가 담긴 유용한 의술일까, 아니면 과학적이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일 뿐일까?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철학과 과학이 의학으로 융합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학문이 형성된다. 특히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연구인 의학은 한 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결정체다. 따라서 한의학도 그 시대 인간들의 과학과 철학의 절정이 녹아 있는 용광로다.

    다만,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해석하는 이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제도적 편협성을 만나면서 더 왜곡되고 뒤틀려 진정한 면모를 보여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잘못된 식민사관의 잘못된 교육을 통해 형성된 왜곡된 과학만능주의의 이미지로 한의학을 섣불리 판단해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이라는 어쭙잖은 인식관을 가지게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의약은 과학이다. 한의학은 조물주의 공간, 시간, 인간의 물음에 대한 생리, 병리 등을 기반으로 치료까지 이어지는 이론과 실천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다만 옳은 패러다임으로 인간의 생리와 병리를 해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되지 못해 과소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한의학의 패러다임은 ‘조물주의 인간에 대한 몸과 마음, 영혼의 자율성을 믿는다’ 그러면서 한의학은 스스로의 항상성을 조절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학적 이론과 실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도움말= 창원동양한의원 조정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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