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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세상의 모든 풀꽃- 주선화(시인)

  • 기사입력 : 2018-07-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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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겁게 사랑하다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듯, 여름꽃들은 대부분 키가 크다. 마당 한편에 접시꽃, 해바라기, 백일홍, 나리꽃, 원추리, 범부채, 비비추가 피어 있다. 모두 다 여름을 대표하는 꽃들이다. 제각기 키를 높이며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면서 쑥쑥 커간다. 비비추꽃이 절정일 때는 보랏빛 입술을 살짝 벌리고 새벽이슬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햇살이 한 줄기 방울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하면 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한여름의 꽃이라 하면 작렬한 태양 아래 해를 따라 도는 노랑해바라기가 단연 으뜸이다. 또 얼마나 열정적인가.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랑한 요정 크리티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아폴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가 아홉 날, 아홉 밤을 선 채로 애원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땅에 뿌리를 내려 한그루 해바라기로 변해버렸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우리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슬프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인가를 알게 된다. 뜨거운 여름, 이런 애절한 이야기 하나로 더위를 달래본다.

    제비동자꽃도 여름에는 한 인물 한다. 옛날 강원도 골짜기에 스님과 동자승이 살았다고 한다. 아랫마을로 시주 떠난 스님이 눈이 너무 많이 와 돌아가지 못하자 스님을 기다리다 추위와 배고픔에 동자승은 그만 얼어 죽고 만다. 눈이 녹고 스님이 돌아와 아랫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동자승을 묻어 주었는데 동자승을 묻은 자리에 해마다 동자승을 닮은 동그란 붉은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 꽃이 제비동자꽃이다.

    타래난초, 범꼬리, 솔패랭이, 하늘말나리, 구름제비란, 노루오줌, 석잠풀, 까치수영, 으름난초, 꽃고비, 범꼬리, 분홍바늘꽃, 칠보치마 등은 모두 여름 산에 야생으로 피는 꽃들이다. 이 꽃들을 집 안으로 옮겨 심으면 얼마 못 가 시들고 만다. 제가 나고 자란 자리를 기억하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등산하다 예쁜 꽃이 피었다고 파와서 아파트 화분에 심어본들 그 생명은 얼마 못 가 죽어버린다. 그러니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래야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들꽃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탐스럽고 다양한 꽃이 많다. 낮게 엎드린 꽃들이 꽃대를 껑충 키우며 나 보란 듯이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꿈이 있어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은 때를 못 만난 젊은 청춘들을 보는 것 같다. 아무런 개성도 없이 풀처럼 늘어져 있는 꽃을 보면 당장에 뽑아버리고 싶다가도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나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선물하지 않는가. 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풀 한 포기도 모두 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전문

    청춘들이여! 땡볕에도 의연히 서서 하루를 견디는 풀꽃이 되자. 아무리 목이 타들어가도 더 싱싱하게 꽃대를 밀어 올리는 풀꽃이 되자. 가장 여리면서도 세상 그 무엇보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꽃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때 되면 꽃 피우고 아름다운 한 생을 만들어가지 않는가.

    주 선 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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