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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정을 금과 옥처럼 보존하자-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8-07-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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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말 조선초기의 학자로, 아버지 이곡과 스승 이제현의 가르침으로 일찍부터 문명을 얻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이성계의 세력을 억제하려다가 장단으로 유배됐고,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금주로 추방됐다. 이성계의 출사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하고 여강으로 가던 도중 일생을 마쳤다. 그가 원나라에서 쓴 ‘寒風(한풍), 찬 바람 불어와’라는 시에는 이국에서 지내는 자신의 회포를 잘 드러내고 있다.



    寒風西北來(한풍서북래)

    찬바람이 서북에서 불어 오니

    客子思故鄕(객자사고향)

    나그네는 고향생각 사무쳐 오네

    然其長夜(초연기장야)

    쓸쓸히 긴긴 밤을 지새우는데

    燈光搖我床(등광요아상)

    등불만이 잠자리에 가물거리네

    古道已云遠(고도이운원)

    옛 도리는 이미 멀다 말들 하기에

    但見浮雲翔(단견부운상)

    다만 뜬 구름 흐르는 것 볼 뿐이네

    悲哉庭下松(비재정하송)

    슬프도다 ! 뜰 아래 소나무만이

    歲晩逾蒼蒼(세만유창창)

    겨울 되자 더욱 푸르고 푸르네

    願言篤友誼(원언독우의)

    원컨대 우리 우정 두텁게 하여

    善保金玉相(선보금옥상)

    금옥 같은 바탕을 잘 보존하세



    이 시는 소나무에 자신의 뜻을 기탁한 영물시(詠物詩)로, 목은이 원나라에서 섭공소(葉孔昭)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쓴 시이다. 겨울 바람이 서북에서 불어오니 나그네는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쓸쓸하게 긴 밤을 지새우니 등불만이 잠자리에 가물거리고 있다. 고도(古道)는 성현들이 추구했던 참된 도리를 말하는데, 옛 도리는 이미 우리들과 멀어졌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뜬 구름 흘러가는 것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 해가 저물어가자 뜰 아래 소나무만이 더욱 푸르게 느껴진다. 옛 도리가 이미 멀어졌다고 해도 우리는 소나무처럼 절개를 지켜 푸르름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비들은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릿발 같은 기개와 꼿꼿한 지조로 남들의 본보기가 돼야 하고, 어려운 사람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인정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옛 선비들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늘 염두에 뒀다. 수기의 단계에서는 치열하게 인성과 학문을 연마하고, 그다음에는 남을 다스리는 치인의 경지(대부, 大夫)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목은은 소나무의 모습에서 선비로서 갖춰야 할 덕성(德性)을 본받고자 했다. 그래서 목은은 친구와 우정을 두텁게 해 금과 옥처럼 좋은 관계를 잘 보존해 성현들이 추구했던 길을 함께 가자고 했다. 추운 겨울 이국에서 친구와 우정을 두텁게 하면서 서로 학문에 대해 권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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