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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26) 진해 김씨박물관·소사주막

시간이 멈춘 ‘근대사의 보물창고’

  • 기사입력 : 2018-06-2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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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걸음 내딛는 순간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낡아서 칠이 벗겨진 간판이 어린 시절 옛날 동네의 기억을 불러온다. ‘부산라듸오’ 간판 아래 희뿌연 유리창 너머에는 각진 구형 라디오들이, 샛노란 ‘藝術寫眞館(예술사진관)’ 간판 아래는 빛바랜 사진과 오래된 카메라들이 옹기종기 진열돼 있다. 길모퉁이를 돌면 ‘김씨박물관’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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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김씨박물관’ 전경. /성승건 기자/


    진해 소사마을 입구에 있는 김씨박물관은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개인박물관이다. 새빨간 우체통이 달려 있는 빛바랜 회색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1900년대부터 1980년대를 아우르는 온갖 물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축, 분유통, 옛날 장난감과 책가방,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 괘종시계, 흑백 사진과 텔레비전, 아이스케키 통, 진공관 라디오에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 백화점에서 썼던 금전출납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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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김씨박물관’ 전경. /성승건 기자/

    김씨박물관의 ‘김씨’는 김현철(65)씨다. 그는 30여 년간 전국 각지에 있는 근대유물을 수집해온 근대유물수집가다. 2009년 문을 연 박물관은 그의 어머니가 살던 공간이다. “어머니가 여기 소사마을에서 자랐어요. 부산에 계시다가 말년에 여기 돌아오고 싶어 하셔서 2002년 이곳에 오셨고 2006년에 저도 넘어왔죠. 수집한 물건이 많아 박물관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남겨주신 이 집에 만들게 된 겁니다.” 김 관장이 박물관을 만들게 된 계기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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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김씨박물관’ 의 전시 물품들. /성승건 기자/


    집의 연륜도 전시된 물건들 못지않다. 김씨에 따르면 집의 건축연도는 1930년대다. 기와지붕과 김 관장이 생활하는 주택 내부 서까래 같은 기둥은 건축 당시의 것 그대로란다. 대부분 현대적인 주택이 가득한 마을에서도 옛 정취를 간직한, 보기 드문 집이다. 박물관과 전시된 물건들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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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김씨박물관’ 의 전시 물품들. /성승건 기자/


    김씨박물관에서 50여m를 더 걸으면 또 하나의 독특한 공간이 나온다. ‘스토리텔링 박물관 소사주막’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도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근대유물 박물관이다. 입구에는 ‘김씨집안 100년의 이야기와 유물로 만들어진 곳’이라는 소개가 붙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김씨 역시 김현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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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스토리텔링 박물관인 ‘소사주막’.


    ‘소사주막’은 김 관장이 집안의 역사를 추적하고 복원하며 만든 곳이다. 김씨박물관보다 좀 더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김 관장은 웃으면서 스스로를 ‘갑부집 후손’이라고 소개한다. “외고조부가 1900년대 초 마산 창동 일대에서 객주를 운영했던 갑부였어요. 원래 해주상인으로 무역을 하며 부를 쌓아서 보통 객주가 해주집으로 통했다고 전해지죠. 외증조부도 역시 부림시장에서 양복점과 메리야스, 신발 대리점을 하며 돈을 상당히 많이 벌었습니다. 친조부는 진해 웅천 사람으로 1906년 개교한 민족사학인 웅천사립개통학교 교사였어요. 주기철 목사가 조부의 제자예요. 큰아버지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사진공부를 한 후 웅천읍내에서 ‘예술사진관’을 열었고요. 외가, 친가 모두 남다른 이야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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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스토리텔링 박물관인 ‘소사주막’의 전시 물품들.


    김 관장은 양가 집안의 유물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산, 진해 근대 생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 조상들이 모두 진해, 마산을 기반으로 생활해온 까닭에 그들의 일상사가 결국 진해, 마산의 근대사와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씨박물관이 온갖 물건이 모여 있는 만물상 같은 느낌이라면 소사주막은 오래된 집안을 구경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된 유물도 구식 의복과 교복, 담배, 미싱, 교과서, 사진기, 쥐덫 등 생활용품들이 좀 더 많다. 3할은 김 관장 집안의 유물, 나머지 7할은 그가 추적한 근대사와 유년시절의 기억에 맞춰 수집한 물품들이다.

    ‘집안유품’이라고 표시된 곳에 낡은 빗과 자잘한 도구들이 눈에 띈다. 보부상이던 외고조부의 유품으로 상투를 빗을 때 썼던 빗과 갓을 틀 때 썼던 도구, 색이 바래고 겉이 바스러진 가죽 소품집 같은 것들이다. “아마 1890년대 사용하던 물품들일 거예요”. 김 관장은 전시된 물품들 중에서 아마 역사가 가장 오래됐을 거라고 덧붙인다. 외갓집에 있던 올빼미 모양의 괘종시계, 그의 외조부 동생이 고등학교 밴드부 시절 사용했던 누런색 종이의 악보, 김 관장 여동생이 어린 시절 입었던 빨간 스웨터와 카키색 바지 등 부잣집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집안 유품은 종류가 다양하다. 비교적 입구에 있는 사진첩과 옛날 사진은 모두 큰아버지가 운영했던 웅천예술사진관 필름에서 인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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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스토리텔링 박물관인 ‘소사주막’의 전시 물품들.


    ‘한사숨표 성냥’ 라벨지는 김 관장이 수집한 유품 중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다. “여기에 보면 ‘이번에 처음 귀국에서 나왔고’라고 돼 있어요. 조선 팔도에 다른 성냥 많지만 국산품이라 이것만 사달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라벨지 역사를 추적하느라 옛날 신문 광고들을 뒤졌는데 1899년 제국신문 4월자에서 똑같은 성냥 광고를 발견했어요. 이 성냥이 사실상 우리나라 1호 성냥인 거죠.”

    소사주막이라는 명칭은 이야기와 관련이 깊다. “개화기 때 실제 소사주막이라는 이름의 주막이 이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을 문헌에서 보게 됐어요. 옛 주막이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이 스토리텔링 콘셉트의 박물관과 비슷하다고 봐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소사주막은 1890년 호주인 데이비드 선교사가 부산으로 가기 전 하룻밤 묵었던 곳인데 당시 그의 외증조부가 데이비드 선교사와 만났고 길 안내도 도왔다고 한다.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공간이다.

    두 곳 모두 크지 않은 개인박물관이지만 알음알음 이름이 난 덕에 평일, 주말가리지 않고 꾸준히 관람객이 찾는다. 최근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 처음에 고물을 많이 모아놨다며 시큰둥해하던 나이 많은 사람들도 요즘에는 좋다며 즐겨 찾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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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의 스토리텔링 박물관인 ‘소사주막’의 전시 물품들.


    지난 주말 아이 둘,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진영(35)씨는 “집이 장유인데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왔다. 아이들도 재밌어하고 가족들이 같이 보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도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20여년 토박이인 이연심(57)씨는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못 보던 물건을 보고는 반색했다. “우리가 어릴 때 보던 것들인데 감회가 새롭지. 이런 공간이 있으니 추억도 생각나고 좋잖아요. 반갑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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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유물들이 가득한 곳을 거닐다보니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거나 잠시 멈춘 것 같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릿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예전의 기억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직사각형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만화영화를 보던 기억. 정신없이 바쁜 삶 속에 어느 날 문득 흘러가버린 옛 기억이 그리워질 때면 이곳에 발걸음해보자.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 기억에 지친 현재를 조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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