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6월 2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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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승석 경남범숙학교장

아이들 손잡고 갑니다, 아무나 가지 않는 그 길
위기 소녀들과 18년 ‘사제 동행’ 이승석 경남범숙학교장

  • 기사입력 : 2018-06-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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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세상의 모든 길은 간 길과 가지 않은 길로 나뉜다. 누구든 길을 선택하고 그 길에 들어서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선택한 길을 간다면 그것을 우리는 운명 또는 숙명이라 부를 것이다.

    미처 꿈꿔 보지 않았던, 함께 가는 사람조차 많지 않은 길을 선택해 18년째 걷고 있는 이승석 경남범숙학교장을 만나 그동안 다양한 도전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일명 ‘범수기’라 불리는 학생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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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석 경남 범숙학교장이 창원시 의창구 북면 범숙학교 사랑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무지갯빛 머리칼 소녀들을 만나다= 경남범숙학교는 도교육청 지정 위탁교육기관으로, 가정이 해체되거나 가정폭력 피해를 입거나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등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보호·지원하는 ‘경남 범숙의 집’에서 생활하는 여학생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승석 교장이 범숙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이다. 사범대를 다녔지만 교사보다는 보다 사회성이 강하고 활동적인 일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지인의 소개로 대안학교 교사 모집공고를 보게 됐고 큰 기대 없이 응시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모든 게 시큰둥하게 느껴졌고, 지원자들이 모여 대안학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워크숍에서는 급기야 10분 만에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다음 날 생각지 못한 연락이 그에게 왔다. 당시 조현순 범숙의 집 관장이자 1대 범숙학교장이 함께 일해 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왜 학교가 필요한지, 교사가 왜 중요한지, 이승석이라는 사람이 왜 함께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조현순 관장의 열정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3개월만’ 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노랗고 빨갛고 파란 색을 입힌 여학생들이 욕설과 반말을 섞어 내뱉듯 하는 행동이나 말, 공부보다는 이성에만 관심을 쏟는 모습에 선뜻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마음만큼 아이들과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갈등은 계속됐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참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던졌지만 자신이 떠난 후 갈등을 빚었던 그 학생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걱정됐다. 그는 용기를 냈고 나는 선생, 너는 학생이라는 겉옷을 던져버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을 맞대보자며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그 손을 잡은 그 학생은 어엿하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랑받는 아내, 엄마로 살고 있다.

    “지금도 갈등의 연속이에요. 우리 아이들은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가시를 많이 세우고 있어요. 처음엔 그걸 몰랐기에 갈등도 잦았고 상처를 받기도 했죠. 저마저 사표를 내고 가버리면 아이들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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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석 경남 범숙학교장이 창원시 의창구 북면 범숙학교에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엄둥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사랑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소녀들과 함께 무지갯빛 꿈을 꾸다= 아무리 사회초년생이었지만 8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으로 시작해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 범숙학교에서의 일을 그가 18년째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나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오히려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고,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고 꿈꾸며 그 길을 다졌기 때문이다.

    “범숙학교에 오기 전까지 나름대로 사회적인 활동도 했지만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곳에 오면서 나 자신이 누구이고 여기에 왜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죠. 그동안의 삶을 반성하게 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이 열리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통해 삶을 배우는 일도 매우 많죠. 그래서 이렇게 머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조현순, 고명천, 하둘남 교장의 뒤를 이어 2012년 경남범숙학교의 제4대 교장이 됐다. 부담이 컸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피하지 않고 맞섰다.

    범숙학교에서의 수업은 보통교과 50%, 대안교과 50%로 편성돼 있다. 대안교과에서는 특히 다양한 체험수업을 위주로 하며 학생들이 배우기를 원하는 수업은 꼭 개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범숙학교는 매년 진행하는 아름다운 도전, 뮤지컬 공연, 벽화그리기 활동 등으로 유명하다.

    2001년 전국의 청소년보호시설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했던 ‘제1회 아름다운 도전 국토순례’ 기획도 그가 함께했다. 17박 18일 동안 전국을 걸으며 ‘문제아’라는 낙인 대신 학생들의 자의식과 자신감을 키워보자는 취지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국토순례 후 당시 범숙학교 학생 전원이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그중 5명은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냈다.

    “그때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그동안 우리는 아이들을 가둬놓고 기술교육만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후 범숙학교는 매년 국토순례, 전국 자전거종주, 해외 자원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아름다운 도전을 이어오고 있고 올해는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범숙학교 학생들은 올해 2월 공연한 ‘드림걸즈’와 2016년 ‘캣츠’, 2015년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비롯해 지난 20년간 모두 19편의 뮤지컬 작품을 선보였다.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며 기획된 뮤지컬 공연은 범숙학교의 특수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은 아이들을 방치하는 사회고발극이자 아이들의 내적인 성장을 이끄는 심리치유극,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통로가 됐고 아이들과 사회도 변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이런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 보람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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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석 경남범숙학교장.

    ◆그가 꿈꾸는 무지갯빛 내일= 범숙학교는 교육과 양육을 함께 수행하는 전국 최초의 청소년 보호지원시설이었고 지금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모범적인 운영 모델이다. 전국적으로 범숙학교와 같은 시설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소중함을 알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을 키우는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는 것과 동료교사들의 처우 개선에 집중하고 있고, 길게는 지난 20년간 범숙학교를 운영하며 모은 자료와 쌓은 노하우를 백서 형태로 개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잠재력이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무궁한 잠재력을 발견당하지 못한 거예요. ‘너희는 원래 그런 아이’라고 낙인찍지 말아주세요.”

    그는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얘들아, 너희들은 있는 그대로 소중해. 너희들의 가능성을 믿고 힘든 상황을 외면하려 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아픔을 치유해 가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 가자. 선생님이 함께할게.”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게 중요하죠. 이 일을 얼마나 더할지는 모르겠어요. 사회에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면 쓰임을 다할 때까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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