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밑머리 - 이처기
- 기사입력 : 2018-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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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글 때 스미는 꽃향이 아니다
등대 아래 앉았던 갯바위가 식는 달밤
튕기는 물방울 함께
흩날리며 나부끼던
☞ 세계를 육지와 바다로 이분했을 때 갯바위는 육지의 귀밑머리이고 바다에겐 넘어야할 무엇인가 보다. 바다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갯바위까지 달려갔다가 귀밑머리 하얗게 다쳐서 되돌아가곤 한다.
바람이 거센 날 바람의 흉내로 휘익 갯바위를 넘어가는 듯 했지만 묵묵부답 갯바위는 갯바위일 뿐 상처 입은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도로 끌려가는 바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바다의 노역과 마주친 시인은 ‘등대 아래 앉았던 갯바위가 식는 달밤/튕기는 물방울 함께/흩날리며 나부끼던’이라는 놀랍도록 참신한 ‘귀밑머리’ 이미지를 창출해 낸다.
이 ‘귀밑머리’는 벙글었다 지는 이 세상 모든 꽃의 귀밑머리이거나, ‘튕기는 물방울 함께/흩날리며 나부끼던’ 바다의 귀밑머리이거나, 속절없이 바래가는 너와 나의 귀밑머리이거나, 쉼 없이 시를 썼다 지우는 늙은 시인의 하얗게 나부끼는 귀밑머리이거나…. 조은길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