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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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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난 예술은 도통 모르겠다

책 읽어주는 홍아 (11) 달과 6펜스(서머싯 몸)

  • 기사입력 : 2018-05-30 14: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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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그림의 가치가 돈으로 따지면 얼마로 보이십니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이게 그림으로 보이십니까?"

    난 이렇게 자문해보고 두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한다. "모르겠다."

    이 미술품은 국내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다. 지난 7일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에서 김환기(1913~1974)의 대형 붉은 점화 '3-II-72 #220'이 85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국내 미술품 최고가 10점 중 8점이 김환기 작품이다. 8개 작품의 총가격은 당시 낙찰가 기준으로 400억원을 훌쩍 넘는다. 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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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미술 선구자인 김환기(1913~1974)가 1972년 그린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가 낙찰가 85억 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연합뉴스/

    이와 비슷한 '모를 소설'을 접했다. 수도 없이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예알못(예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를 스스로 괴롭혔다. 달과 6펜스는 나에게 힘든 소설이었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증권 브로커로 가족과 탈 없는 중산층 삶을 누리다가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가족과도 하루아침에 인연을 끊어버린다. 그는 심지어 재산도 없이 런던을 떠난다. 이런 괴상한 행동의 이유는 한 가지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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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가 가족을 버린 이유를 밝히고 있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예술가가 되려면 파리로 보내라했던가. 그는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쉽게 말해 거지같은 삶을 산다. 챙겨 먹지 못해 양 볼은 푹 꺼졌고 수염은 덥수룩하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며 아사를 모면할 만큼 먹고 살고 있다.

    그런 파리에서의 생활에서 그는 동료의 아내를 빼앗아 동거하다 또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녀는 충격에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그는 거지와 다름없는 파리의 생활을 전전하다가 태평양 타히티 섬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쓸쓸한 말년을 맞는다.

    그럼 그의 예술작품은 어떻게 됐을까. 그의 작품은 돌연 희대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그린 습작이라도 한 장 가지고 있다면 신세를 바꿀 만큼의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떠나지 않은 질문이 있다. "예술작품의 가치가 그 예술가의 윤리적 파탄을 상쇄할 수 있을까?" 실제로 마약, 도박, 문란한 연애, 자살 등과 관련된 예술가는 대단히 흔하다. 황금색의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사생활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음에도 사후 친자 소송이 14건 발생했다. 그만큼 클림트 사생활은 단순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피카소는 어떨까. 피카소는 거의 난봉꾼에 가깝다. 피카소의 여성은 크게 알려진 사람만 7명이다. 피카소는 동거녀, 아내 혹은 자신의 자식을 낳았던 여성이 있는 것과 상관없이 다른 여성들에게 접근했고 급기야 미성년자를 임신시키기도 한다. 그 미성년자는 딸의 가정교사였다. 피카소의 여성 일곱 명 중 두 명은 자살하고 두 명은 정신병자가 됐다. 이런 삶과 달리 피카소의 모든 작품의 가격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렇다고 고갱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지는 않다. 스트릭랜드의 삶을 통해 소설은 인간의 이상과 현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달(Moon)은 이상을 뜻하고 6펜스는 현실이다. '미쳤음'을 뜻하는 'Lunatic' 단어에도 '달'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처럼 서양에서 달의 이미지는 '정신 이상'과도 연결돼 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는 이런 '미침'과 '이상'이란 달의 이미지가 혼재돼 있는 것은 아닐까. 스트릭랜드의 미친듯한 행동들은 이상을 좇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괴상하게 보이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민음사에서 나온)책의 마지막에는 친절한 작품해설이 있다. 여기서 그 해설을 되풀이하지는 않으려한다. 내가 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해 살짝 커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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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달과 6펜스'의 표지.

    책을 읽고 내가 얻은 한 가지 답은 "모르겠다"이다. 난봉꾼으로 살았던 예술가의 작품이 대기업 매출과 맞먹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대신 내가 책을 읽으며 집중한 부분은 "그림을 그리고 싶소"라는 스트릭랜드의 말이다. 그림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스트릭랜드. 그리고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가 된다. 여기서 떠오른 한 마디는 "버려야 얻는다"이다. 장자 혹은 니체의 가르침에서 접했던 명제가 이 책에도 포함돼 있다.

    나도 한 때 간절히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가진 것을 주렁주렁 어깨에 매단 채 그림을 그리려고 했고 결국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진짜 삶의 진리는 어떻게 무엇을 얻느냐가 아닌, 어떤 것을 어떻게 버리느냐에 있는 것에 있을 수도 있다.

    고전명작 달과 6펜스를 읽고 수많은 서평과 다른 감상, 다른 배움을 얻고 싶었다. 책을 읽고 꼭 어떤 가르침이나 메시지를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성격이 그런지라 뒤적뒤적 책을 다 읽어내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렇다고 흥미가 떨어지는 책은 아니다. 모든 고전은 재미있다.

    예술계 미투가 사회 전반으로 퍼졌고 우리나라 미술작품 가치도 한 작품 당 100억원이 넘는 날이 곧 도래한다고 한다. 이런 때 달과 6펜스를 펼쳐 고민을 같이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P.S. 신선한 고민을 할 수 있게 이 책을 선물해주신 이병문 편집국장님께 뒤늦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조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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