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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홍곡지지(鴻鵠之志) - 기러기나 고니 같은 큰 뜻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8-05-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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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秦始皇)이 죽고 그 아들 이세(二世) 호해(胡亥)가 다스리던 시절에, 남의 집 머슴으로 일하던 진승(陳勝)이 잠시 쉬는 사이에 다른 일꾼들에게 “내가 부유하고 귀하게 되면 자네들을 잊지 않겠네!”라고 했다. 다른 일꾼들이 다 비웃었다. 그러자 진승은 “제비나 참새가 기러기나 고니 같은 큰 새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燕雀安知鴻鵠之志)”라고 탄식했다.

    기원전 208년 국경지방으로 징발되어 가던 중에 진나라 정권을 무너뜨릴 군사를 일으켜 최초로 반기를 들었다. 나중에 스스로 왕(王)으로 일컬었고,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운 뒤 은왕(隱王)에 봉해 주었다.

    그 이후로 ‘남다른 큰 뜻’을 ‘홍곡지지(鴻鵠之志)’라 한다. 중국에서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단어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큼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지난 5월 4일 북경대학(北京大學)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임건화(林建華) 총장이 기념사에서 ‘홍곡지지(鴻鵠之志)’를 잘못 ‘홍호지지(鴻浩之志)’로 읽었다. 즉각 국내외의 비웃음이 세차게 일어났다. 우리나라 여러 신문에도 그 사실이 보도되고 몇몇 신문에서는 칼럼이 게재되었다.

    북경대학 총장은 즉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글을 학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그 요지는 이러하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내몽고 농촌으로 강제로 옮겨져 농민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때 책이란 책은 모택동(毛澤東) 주석의 글 몇 편과 공산당 선전용 책자뿐인지라 한창 지식욕이 왕성할 시기에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8년 북경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입시 때까지 주어니, 서술어니 하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으므로 저의 어문학 기초가 너무나 낮습니다. 영어도 대학 들어가서 처음 배워, 나중에 미국 유학하면서 애를 먹었습니다.”

    5월 7일에 중국 천진사범대학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여 휴식 시간에 중국교수들에게 이 이야기를 화제로 올렸더니 중국교수들은 “그 이야기가 한국에까지 퍼졌습니까? 그래도 북경대학 총장은 무식해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라도 하였지만, 다른 대학총장들은 틀린 줄도 모르고 사과할 생각도 안 합니다. 대학총장만 그런 것이 아니고, 국가 간부들도 마찬가지지요”라고 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홍콩 대만 등지에서는 이 일을 북경대학을 비웃을 좋은 거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북경대학 총장이나 북경대학을 비웃을 일이 아니다. 한 국가의 어문 교육정책이 잘못되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에게 한평생 피해를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우리나라도 어문교육에 신중을 기해서 젊은 많은 학생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겠다.

    * 鴻 : 큰 기러기 홍. * 鵠 : 고니 곡.

    * 之 : 갈 지, …의 지. * 志 : 뜻 지.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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