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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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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志雲) 한하균 선생님 영전에 부쳐- 이상용(극단 마산 대표)

마산연극 이끌던 열정 배우겠습니다

  • 기사입력 : 2018-05-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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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운(志雲) 한하균.


    선생님,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렸던 어제 좋지 않은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생님의 부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향년 87세. 왜 그렇게 빨리 가셨습니까. 먼저 가셔서 후배들을 위한 연극판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까.

    선생님, 제가 평생동안 연극을 하게 된 것도 순전히 선생님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 1학년이던 1971년도였지요. 지금의 경남대 캠퍼스가 완월동에 있을 그 당시에 그곳에는 ‘완월강당’이라는 천혜의 연극무대가 있었습니다. 그 무대에서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연극을 배웠습니다.

    마산연극계의 1세대가 온재 이광래 선생이시고, 2세대가 배덕환, 김수돈, 정진업 선생이셨다면, 3세대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광래 선생님은 1932년도에 마산 최초의 극단 ‘극예사’를 창설하셨고, 배덕환 교수님은 영문학자이자 연출가로, 화인 김수돈 선생님과 월초 정진업 선생님은 시인이자 연극연출가 또는 연극배우로, 그리고 지운 선생님께서는 연극연출가로 당대를 풍미하셨지요.

    선생님께서는 암울했던 1950년대에 벌써 고향 통영에서 ‘까치의 죽음’(1952), ‘뇌우’(1953), ‘붉은 장갑’(1954) 등 10여 편의 작품을 공연하셨고, 1962년부터는 활동무대를 마산으로 옮겨 마산연극의 지평을 넓히는 데 앞장서셨지요. 1962년에는 ‘고래’를 연출하셨고, 1963년에는 배덕환·한기환 교수님과 더불어 ‘마산예술인극장’이란 연극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셨습니다. 1964년 ‘영웅과 병사’, 1969년 ‘나폴레옹과 이발사’ 등이 그 증거들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더불어 마산연극을 주도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오랜 기간 마산연극협회 회장을 맡아 마산연극과 경남연극의 발전에 기여하신 선생님. 이젠 부디 연극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소서.

    이상용(극단 마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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