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거부의 길] (1339) 제23화 대륙의 사람들 ⑨

‘부자보다 권력이 더 무섭구나’

  • 기사입력 : 2018-05-16 07:00:00
  •   
  • 메인이미지


    이선장이 주원장에게 가서 아뢰었다.

    “일개 백성이 감히 천자에게 향응을 청할 수 있느냐? 이 자는 부자니 장차 나라를 어지럽힐 것이 분명하다. 잡아다가 죽여라.”

    주원장이 대로하여 영을 내렸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어찌 그런 일로 심만삼을 죽이려고 하십니까?”

    황후 마씨가 만류했다.

    “심만삼은 강남 제일의 부자다. 황제보다 돈이 더 많다고 한다. 그 죄로 죽어야 한다.”

    “백성이 돈이 많은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부자라고 해서 심만삼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황후 마씨가 반대했다.

    “부자는 불길하다.”

    “어찌 불길합니까?”

    “부자들이 반역자들과 손을 잡으면 나라에 해가 된다.”

    “그렇다고 죄없는 자들을 죽이면 민심이 떠날 것입니다. 백성을 착취했다는 죄를 씌워 귀양을 보내십시오. 부자들 중에 백성을 착취하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주원장은 황후의 말을 듣고 심만삼을 운남으로 귀양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심만삼은 주원장을 위해 남경성을 축조하고도 귀양을 가게 되었다.

    ‘부자보다 권력이 더 무섭구나.’

    심만삼은 운남으로 끌려가면서 비통했다.

    주원장은 이때 강남 부자 대부분을 오지로 숙청했다. 그는 부자들이 재력을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킬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심만삼은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심씨 일가는 여전히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다.

    주원장이 명나라를 개국한 지 19년이 되었을 때 심만삼의 손자인 심장과 심자가 옥사에 연루되고 심장이 옥에서 죽었다. 심씨 일가의 부는 크게 흔들렸고 증손자인 심덕전 등이 남옥의 반란에 연루되면서 6명의 손자와 사위 일가가 몰살되어 심씨 일가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중국 역사에서 10대 부자로 불리는 심만삼이지만 권력자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자세한 행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소주의 주장(周莊)을 비롯하여 청나라 건륭제 때 후손인 심본인이 건축한 심청 등이 옛날의 부귀와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심만삼은 주장에 주로 살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심만삼이 젊었을 때 죽어가는 청개구리를 구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청개구리가 보은하기 위해 취보분을 주었다. 취보분은 은화를 넣으면 은화가 가득 차고 금화를 넣으면 금화가 가득 차는 보물이었다. 심만삼은 청개구리로 인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진호는 몇 년 전에 남경에 간 일이 있었다. 남경성은 중국의 여러 성 중에서 가장 견고했고 성이 잘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이 심만삼이 건축한 성인가?’

    김진호는 웅대한 성을 보고 심만삼의 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심만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중국의 많은 부자들이 절강성에서 배출되었다.

    유청이 오래간만에 찾아왔다. 유청은 북경의 가게들마다 다니면서 여성의류를 주문받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