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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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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약초박물관 짓는 약초꾼 왕태령씨

의령 임업후계자… 약초 키우며 꿈도 키우는 산사나이

  • 기사입력 : 2018-05-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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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무척 화창했다. 이틀 전에 큰비가 내려서인지 대기가 한층 맑아졌다. ‘왕가네 약초박물관’이라는 표지판이 도로 한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마을 어귀에 주차했다. 표지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처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도보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 고생길이 됐다.

    몇십 미터 앞이 목적지일 것이라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가 내려 진창이 된 산길을 구두에 양복 입고 걷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길 모퉁이를 돈다. 이제 다 왔겠지 하는 기대는 여전히 빗나갔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카메라를 고쳐 메고 그렇게 1.2㎞ 가까운 길을 걸었다. 산새소리, 물소리가 정겹기는 했지만 쏟아져 내리는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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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네 약초박물관 안에서 왕태령씨가 활짝 웃고 있다.


    해발 200m쯤 왔을까. 계곡 사이에 전통닭의 일종인 백봉오골계를 사육하는 계사가 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양계장 옆에는 백구가 있다. 짓는 소리가 위협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저 녀석, 사람이 그리운 것이구나!”라고 짐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발길은 어느새 정상 부근에 도달했다. 갑자기 길이 끊어졌다. 여기가 아니라면 낭패라고 생각하던 순간, 둥근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눈길을 준다. 직감적으로 그가 왕태령(54)씨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 역시 나를 알아봤다.

    왕태령씨. 자칭 약초연구가다. 3년 전 의령군 의령읍 하리 벽화산 해발 200여m 계곡에 정착, 각종 약초를 심고 관리하는 임업후계자다. 6만6000여㎡ 규모의 산주이기도 하다. 그가 사는 곳은 전역이 약초재배지라고 보면 무방하다. 간이 나무의자에 자리잡은 기자에게 그가 내놓은 것은 이 산에서 자란 구지뽕 뿌리를 달인 차다. 양약은 고구(良藥苦口·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고 했던가. 첫맛에 반할 것은 아니지만 면역을 증강하는 데 좋다는 말을 사탕 삼아 한 잔 들이켠다.

    산에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도시에서 20여년간 건축자재 임대업을 했지요. 건설경기도 침체하는 상황에서 재력을 가진 서울의 업체들과는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아 염증을 느꼈죠. 10년 전부터 신체 단련을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약초분야 연구에 뛰어든 계기라고 할까요.”

    왕씨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건축업에 슬슬 염증을 느끼던 차에 운동을 시작했다.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할 만큼 운동 마니아다. 등산은 일상이지만 홀로 하는 산행을 즐긴다. 산행 과정에서 산약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왕이면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 지난 2015년 원광대 한방건강학과에 편입, 2년간 음양오행, 약리, 중의, 본초학 등 한의학 공부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 정착했다’로 정리된다.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는 백수오를 길러 재미도 좀 봤다.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업계가 홍역을 치를 동안에도 그의 백수오에는 꾸준히 수요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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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초를 돌보는 왕태령씨


    의령읍 상리가 고향이라지만 태어난 곳은 아니다. 원적지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현재 거처하는 벽화산은 원적지와 지근거리다. 그래도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방학 때마다 이곳을 방문한 만큼 마을의 연세 든 어르신들은 거의 다 안단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난 2014년 벽화산 자락의 산을 매입해 약초밭으로 조성하면서 그의 ‘약초박물관 꿈’은 시작됐다.

    산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작업은 혼자 한다. 120㎡ 규모의 약초박물관도 직접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기존의 약초박물관을 대체할 새로운 철골구조물을 만들고 있다. 쉬엄쉬엄 서두르지 않으니 언제 완성될지 기약없지만 아마도 6~7월쯤이면 개관할 수 있지 않겠냐 하고 귀띔해준다. 기존의 박물관에서는 주요 약재를 해표(체내 열과 한기 등을 조절), 청열(열기를 내려주는 약재), 보익(기력을 보완해주는 약재), 수삽(충만한 기력을 유지시켜주는 약재) 등 15종으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약재는 200종에 가깝다.

    박물관 옆에 있는 앙증맞은 연못도 손수 팠다. 연못 앞 흔들그네는 모두에게 여유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산에 있는 돌로 100여m에 이르는 축대를 쌓고 박물관쪽으로 흐르던 물길도 산자락으로 돌려놓았다. 보기보다 산이 깊어 사시사철 약수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산을 오르면서 봤던 오골계가 자신이 사육하는 것이라는 것을 대화 중에 알게 됐다.

    거처 앞길을 돌아 경사가 있는 산길을 따라 가면 그가 심은 약초의 효능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하나씩 서 있다. 물론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곳에 심어둔 약초는 산양삼, 초오, 반하, 봉삼 등 120여 종에 이른다. 박물관 뒤편 평지에는 꽃무릇부터 상사화, 초오, 능소화, 매발톱, 감국, 강활 등 온갖 화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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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태령씨가 3년째 거주하는 약초박물관 일대 전경.


    지난해에 임업후계자로 등록하고 산림청이 공모한 산림복합경영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3년에 걸쳐 3억2000만원의 국비를 지원받게 됨으로써 당초 그가 계획한 산림경영의 꿈은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그가 꿈꾸는 모습은 온 산을 약초 홍보무대로 꾸미는 일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이곳에 들러 약초박물관을 관람한 후 실제 약초가 심어져 있는 루트를 견학하면서 자연적으로 약초에 대해 눈이 뜨이게 한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간벌작업이 완료되면 모두 250여 종의 약초를 심을 계획이다. 박물관 입장료를 받을지, 받는다면 얼마를 책정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약초박물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는 한때 그의 숙소였던 부서진 천막더미가 있다. 천막의 잔해가 놓인 방부목으로 만든 널찍한 나무바닥은 제법 넓이가 있다. 이곳은 그가 매일 요가를 즐기는 곳이다. “느티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은 밧줄은 뭔가요?” 언뜻 특별한 용도가 없어 보이는 밧줄 두 개가 눈에 띄어 물었다. “매주 이곳을 찾아오는 아내가 플라잉 요가(밧줄 등에 매달려 신체를 단련하는 전신 체조의 일종)를 하기 위해 매달아 둔 것입니다. 아내가 부산에서 요가 강사를 하고 있는데 1주일에 한 번은 꼭 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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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씨가 박물관을 직접 만들고 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아내는 나무에서, 남편은 평상에서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심신을 단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으로 남기면 참 보기 좋은 장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시사철 산중 생활을 하면 힘들 것 같아 물었다. 예상 밖의 답이 즉각 돌아온다. “불편한 것 빼고 다 좋습니다. 물론 불편한 것도 그다지 없어요(웃음). 3년간 잠자리로 사용하던 텐트가 지난번 비바람에 무너져 잠자리를 옮긴 게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힘든 건 아닙니다.”

    그의 화법은 항상 긍정으로 끝나는 특징이 있다. 너털웃음의 한편에는 자연주의자의 넉넉함과 여유도 배어난다. 언젠가 그가 꿈꾸는 약초세상이 이곳 벽화산에 활짝 펼쳐지길 마음속으로 빌며, 올라갔던 길을 되밟아 일상으로 향했다.

    글·사진= 허충호 기자 chhe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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