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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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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용만 경남꿈키움중학교 교사

‘1인 4역’으로 아이들의 든든한 ‘행복지킴이’
‘난 교사여서 참 행복합니다’
시민기자·파워블로거·시민활동가

  • 기사입력 : 2018-04-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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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정말 이상한(?) 교사였다.

    봄이라고 하기엔 유난히 더웠던 지난 11일 오후 진주시 이반성면에 위치한 경남꿈키움중학교에서 김용만(43) 교사를 만났다. 그와 처음 마주한 장소는 학교 뒤편에 위치한 토끼사육장이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사육장 천장에 그물망을 설치하고 있었다. 작업 과정에서 쉼없이 학생들과 다른 교사를 닦달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작업반장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맺힌 땀방울,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턱수염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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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만 교사가 진주시 이반성면 꿈키움중학교에서 다이어트 동아리 학생들과 운동장을 돌고 있다./김승권 기자/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기자에게 김 교사가 처음 건넨 말은 “이거 설치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였다. 기자는 엉겁결에 학생들이 건네준 케이블 타이를 들고 그물망 설치작업에 동참했다. 이처럼 그와의 만남은 범상치 않았다.

    범상찮은 만남처럼 그는 과거 이력도 남달랐다. 학교에서 그의 직업은 교사다. 그렇지만 온라인에서는 1100여건의 글을 게재한 자칭 파워블로거이자 200건이 넘는 기사를 등재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오마이뉴스로부터 시민기자 명함과 취재수첩도 받았다. 시민사회단체 영역으로 눈을 돌리면 활동가라고 불려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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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만 경남꿈키움중학교 교사./김승권 기자/


    지난 2014년 김 교사는 마산YMCA 내 학부모들로 구성된 ‘등대’ 모임과 함께 ‘우리 지역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현황’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자체와 경찰 등 관계당국에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지난해 그는 경남도교육청 스쿨존 개선 관련 부서에 파견교사로 발령이 났고, 경남 전역의 500여개 초등학교 중 150개교를 직접 방문해 문제점을 진단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경남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방안전덮개’ 개발도 김 교사가 파견교사로 있던 부서에서 일궈낸 성과다. 김 교사는 가방안전덮개 제작 과정과 취지를 직접 기사로 작성하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해 세상에 알렸다.

    이처럼 시민기자, 파워블로거, 활동가 등 김 교사의 다양한 이력은 일반적으로 교사라는 공직자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걸어온 길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교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인 사범대학에 진학한 경위 역시 남달랐다. 그는 “솔직히 제 직업에 대한 목적은 교사가 아니었습니다”면서 “사범대를 가긴 했지만…. 남중·남고를 나왔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범대에 가면 여자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간 겁니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백했다. 그러면서 “우리 과에 15명이 있었는데, 제가 14등으로 졸업했어요.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이 학교를 안 오는 애였어요”라는 진실 섞인 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틈만 나면 개그를 시도하는 김 교사는 인터뷰를 할수록 내용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끼리의 대화에서 ‘X발’이라는 욕설이 나오자, 복도를 지나가다가 이를 우연히 듣게 된 김 교사는 ‘뭐! 나는 개발이야’라고 말했다는 둥 썰렁 유머를 남발하며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은 기우에 불과했다. 교육,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말할 때 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교사였다. 기회만 오면 치고 들어가는 농담도 아이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한 교육방식이 몸에 밴 결과였다. 무엇보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결과물도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김 교사가 쓴 기사와 블로그에 게재한 글은 아이들에 대한 희망을 알리고, 학업과 성적에 지친 학생들을 격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지난 2013년 6월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정식 기사로 등재된 김 교사의 글은 ‘난 교사여서 참 행복합니다’였다. 그가 도내 한 인문계 남녀공학 중학교에 재직할 당시 수업시간 중 있었던 일화를 담은 기사다. 이 수업은 담임교사 시간으로 주로 독서나 자습을 하는데 이날 따라 아이들이 학업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본 김 교사는 ‘마피아 게임’을 제안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사라지고 웃음꽃이 피었다고 김 교사는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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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만 교사가 진주시 이반성면 꿈키움중학교에서 다이어트 동아리 학생들과 운동장을 돌고 있다./김승권 기자/



    실제 김 교사는 시험기간이 끝나면 반 아이들과 축구경기를 하는 등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성적을 높일까’를 고민하기보단 ‘어떻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스승이었다. 경남꿈키움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만 4~5개에 이른다. 토끼사육장 설치도 동물사랑 자율 동아리 활동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고, 성적이 아닌 인성을 키워갈 수 있는 교육이야기를 ‘교단일기’라는 제목의 기사나 블로그를 통해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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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만 경남꿈키움중학교 교사./김승권 기자/

    김 교사는 “일반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시험 때문에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어요. 시험기간에 12시까지 학원에 있고, 늘 성적·키·몸무게·재산 등 숫자로 재단되는 아이들을 보면 전혀 행복하지 않아 보입니다”라며 “아이들과 행복하게 수업하고 싶어 대안학교인 꿈키움중학교로 오게 됐죠. 저는 사회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회과목 100점을 맞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바른 인성을 가꾸게 하는 것이 사회교육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회원, 도교육청 파견교사 신분으로 한 스쿨존 개선 활동 역시 오로지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개선’이 목표였다. 그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은 안전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어른들은 ‘애가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죠. 불법주정차 때문에 시야가 가려 운전자도 아이도 서로를 보지 못한 것이고, 안전운전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차량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미처 대처하지 못할 만큼 빨리 달린 것이 문제의 본질이에요”라면서 “그런데 어른들은 건강하게 뛰어 노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이들을 못 뛰게 해야 한다면서 잘못을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크게 잘못됐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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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만 교사가 학생들과 토끼장을 만들고 있다. /김승권 기자/



    김 교사가 아이들이 처한 안전 문제의 심각성과 학생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유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픈 경험과 함께 자신이 자라면서 선생님들에게 받았던 상처를 학생들에게 되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그는 “실내화로 뺨을 맞기도 했고, 어머니가 학교를 다녀간 이후 선생님의 태도가 좋지 않게 바뀌었던 것을 기억합니다”라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정작 어른들은 자기는 말과 행동이 다르면서 아이들이 자기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니가 잘못된 거야’라며 약자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보니까 학교 선생님들 중에 한 명이라도 아이들 편에 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사의 생각과 행동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없었던 건 아니다. 도내의 다른 한 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학교 소풍에서 그는 학생들과 손수건 돌리기, 숨박꼭질, 숨은그림찾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문에 다른 교사들의 점심식사 요청도 정중히 거절하게 됐다. 그런데 다음 날 그는 교무실에서 ‘요즘 젊은 선생들은 버릇이 없다. 어른이 부르는데 밥 먹으러 오지도 않는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는 “무척 당황스러웠죠. 그런데 그때 한 선생님이 ‘교사가 있어야 할 곳은 학생들 옆이다’면서 저를 두둔해줬어요. 그 기억이 잊히지가 않는데, 당연한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현실은 안타깝죠”라고 회상했다.

    누군가는 김 교사를 이상하고 버릇없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인터뷰 중이던 김 교사 주위로 어느새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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