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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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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는 음식이 한약이다?

아침에 멥쌀밥·미역국·무나물 먹었다면
한약재인 갱미·감곽·나복 섭취한 것
어머니 손맛으로 한약 맛있게 버무려

  • 기사입력 : 2018-03-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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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은 그 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융합적 산물이다. 철학의 관념이 예술로서 구체화되고, 과학의 관념이 기술로서 구체화되듯 의학의 관념이 의술로서 구체화된다. 따라서 한의학은 철학이자 과학이며, 한의약은 예술이자 기술이다.

    철학의 기본 인식론적 물음인 ‘인간의 존재 이유’는 과학의 기본 존재론적 물음인 ‘인간의 구성과 기능’으로 연결된다. 또한 ‘구조와 기능’의 존재론적 물음은 다시금 ‘존재 이유’라는 인식론적 물음으로 되물어진다.

    그러한 인식론적 물음과 존재론적 물음에 따른 예술과 기술의 융합인 한약은 일반적으로 ‘신기하다’라고 인식되어 있다. 과연 이러한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한약에는 조물주가 만든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식물, 동물, 광물이 포함된다.

    고대·중세·근세·근대인들이 생각했던 철학과 과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으로 바라봤던 고대의 식물, 동물, 광물이 한약으로 사용됐다. 그러면 당연히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철학과 과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으로 바라보는 현대의 식물, 동물, 광물이 한약으로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왜곡된 식민사관의 역사인식론과 식민사관의 과학존재론으로 현대의 식물, 동물, 광물은 한약으로의 확장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고대·중세·근세·근대인들이 생각했던 철학과 과학은 시대 정신에 맞게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가설과 검증을 거쳐 더 철학적으로, 더 과학적으로 정의되어졌다. 그러한 체계적인 가설과 검증을 우리는 현시대에 누리고 있다.

    물론 동양과 서양의 인류 발달사에서 다른 철학과 다른 과학적 시각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동일 현상에 대한 다른 인식론과 존재론의 차이점이었다. 즉 조물주가 만든 우주의 공간과 시간, 인간을 동일한 시대에 다른 관점으로 이해했던 것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동양과 서양의 인식론과 존재론이 아주 큰 차이를 보인 것만은 아니지만 시대적인 흐름에 따른 특징을 대별화하자면, 동양의 철학과 과학은 생기론적인 관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서양의 철학과 과학은 기계론적인 관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의학에서의 ‘생기론’은 생명현상의 발현은 비물질적인 생명력 혹은 자연법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원리에 지배되고 있다는 생명론이다. 의학에서의 기계론은 생물체를 기계에 비유하고 생명현상을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보는 생명론이다.

    이러한 ‘생기론’과 ‘기계론’ 중 한약은 생기론에 근거하여 발전해 왔다. ‘생기론적 관점이 옳으냐, 기계론적 관점이 옳으냐’의 문제는 단편적인 ‘옳고 그름’의 해답으로 연결되지 않을 듯하다.

    물론 ‘생기론적 관점의 한약이다 보니 신기하다’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약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한약에 대한 막연한 신비로움도 좋지 못하고, 한약에 대한 막연한 불신도 좋지 못하다. 따라서 ‘한약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든지 ‘한약은 먹어두면 좋은 것’이라고 극단적인 생각은 옳지 않다.

    한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상황을 상정하여 보자.

    여러분은 오늘 아침과 점심에 어떤 음식을 먹었나?

    필자는 아침에 멥쌀 밥과 콩나물국에, 무채 나물, 미역줄기무침 등을 반찬으로 섭취했다. 점심에는 바쁜 일정으로 컵라면으로 대신했지만 아침에도, 점심에도 ‘한약’을 섭취했다.

    ‘무슨 소리지?’라고 의아해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멥쌀’은 한약재명으로 ‘갱미’라고 불리고, ‘콩나물’은 ‘대두황권’, ‘무’는 ‘나복’, ‘미역’은 ‘감곽’ 혹은 ‘해채’라고 불린다.

    어떤가? 아침에 먹은 한약재는 ‘갱미’‘대두황권’‘나복’‘감곽’ 등이다. 한약재인 ‘갱미-멥쌀’로 밥을 지어 먹었고, 한약재인 ‘대두황권-콩나물’로 국을 끓여 먹었으며, 한약재인 ‘나복-무’로 나물을, ‘감곽-미역’으로 무침을 해 먹었다.

    점심식사로 한 ‘라면’은 어떤가? 라면의 면발은 쌀가루 혹은 밀가루로 만들어졌다. 물론 컵라면은 밀가루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밀’은 한약재명으로 ‘소맥’이라 불린다. 컵라면 안에 마른 건더기에는 파, 고추, 다시마 등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른 건더기들도 한번 살펴보자. ‘파’는 한약재명으로 ‘총’이라고 불린다. ‘고추’는 ‘번초’·‘당초’ 혹은 ‘고초’, ‘다시마’는 ‘곤포’라고 불린다.

    어떤가? 점심때 바빠서 부랴부랴 먹은 한약재는 ‘소맥’ ‘총’ ‘고초’‘곤포’ 등이다.

    이렇듯 우리는 매일매일 한약을 먹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음식으로 먹는 한약은 ‘맛있게 해 주시는 전문가인 어머니’의 손맛에 의해서 섭취하기 좋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어머니의 손맛’에 의해 맛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통해서 생명력을 유지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면 ‘한약을 맛있게? 하는 전문가가 한의사’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한의사가 활용하는 멥쌀은 ‘배부름이나 영양’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멥쌀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목표로 한다. 한의사가 활용하는 콩나물은 ‘얼큰함이나 영양’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콩나물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목표로 한다.

    한의사가 활용하는 무는 ‘시원함이나 영양’을 목표로 하지 않고 무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목표로 한다. 또한 미역은 ‘향긋함이나 영양’ 대신 미역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밀은 ‘배부름이나 영양’대신 밀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목표로 한다. 파는 ‘시원함이나 영양’ 대신 파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다시마는 ‘향긋함이나 영양’ 대신 다시마의 생리적 활성기능을 목표로 한다.

    필자는 아침에 ‘한약’으로 콩나물 백반 아침 식사를 맛있게 섭취했고, ‘한약’으로 아침 한약을 멋있게 복용했다. 또한 점심에 ‘한약’으로 컵라면 점심 식사를 맛있게 섭취했다.

    아침의 백반 정식과 점심의 컵라면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영양 섭취를 위한 목표였으며, 아침과 점심의 한약은 생명활동 중에 생겨난 불균형을 조절하기 위한 목표였다.

    ‘한약’은 조물주가 주신 ‘식물’ ‘동물’ ‘광물’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다만, 쓰임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물론 약성보다 독성이 더 많은 것들은 조심스럽게 다뤄지거나 배제돼야 한다.

    그래서 한약재를 음식으로 섭취하시든 한약으로 복용하시든 ‘한약은 먹어두면 좋은 것’, ‘한약은 먹으면 나쁜 것’ 형식의 단편적인 이분법적인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약’을 영양 풍부하게 맛있게 해 주시는 전문가는 ‘어머니’이다. ‘한약’을 기능 풍부하게 멋있게 해 주시는 전문가는 ‘한의사’이다.

    비록 ‘멋있는 한약의 기능을 섭취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선택으로 주어져 있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어머니의 맛있는 한약의 영양’을 생명유지를 위해 필연적으로 섭취하고 있다.

    정리 =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도움말 = 창원동양한의원 조정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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