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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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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낫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7 - 이광석

  • 기사입력 : 2018-02-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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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초들에게는 잡념이 없다

    베는 것도 베이지 않는 것도 없는

    물같은 삶, 어찌 잡념의 한 점 티끌인들

    가 닿을 수 있으리

    잠시 낫질을 멈추고 너에게 담배 한 대 권하면서

    너의 사유의 깊이를 재어 본다.

    네게로 네게로 빠져 들어가는 강한 유혹의 애무를 느낀다.

    천둥 번개 몇 개씩이나 삼키고도 이승의 평화와 고요 혼자 투망질하는

    푸르디푸른 자유의 홀씨를 본다.

    마침내 시퍼런 낫날까지도 온몸으로 되받아 눕히는

    분노보다 큰 그대 텅 빈 가슴 속 푸른 해일이여

    베는 것도 덧없음, 베이는 것도 부질없음

    잡초들의 함성이 서늘한 물빛으로 다가온다


    ☞ 이 시인의 시에 차용된 대부분의 잡초 이미지는 소멸의 낫날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이 내장되어 있어 잡초들의 함성을 처음 듣는 듯 낯설고도 뭉클하다. 그중에서도 ‘잠시 낫질을 멈추고 너에게 담배 한 대 권하면서/ 너의 사유의 깊이를 재어 본다.’는 멋진 구절이 있는 이 시에서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잡초들의 함성’을 듣는다. ‘잡념이 없’는 ‘물 같은’ 순응의 삶을 살아갈 뿐인 잡초를, 한갓 낫으로 정복하려다 ‘마침내 시퍼런 낫날까지도 온몸으로 되받아 눕히는’ 거대한 잡초와 맞부딪친 시인이 항복을 선언하듯 낫을 내려놓고 잡초에게 ‘담배 한 대 권’한다니 이 얼마나 리얼하면서도 시적이고 철학적인 포즈인가.

    잡초와 맞담배를 피워 본 시인이 “잡초는 낫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일러주시니 어느 누가 함부로 잡초에게 낫을 휘두를 것인가! 어느 누가 잡초 같은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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