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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그다지 즐겁지 않은 설- 김진현(통영고성본부장·이사 대우)

  • 기사입력 : 2018-0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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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이다.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의 하나다. 일제에 의해 양력설로 대체되는 등 정권에 따라 구정이니 신정이니 부침을 겪다가 1989년에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1991년부터 3일 연휴를 해오고 있다. 내일부터 그 연휴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처럼 모인다. 참 즐거운 날이다. 그래서 명절이다.

    그런데 이번 설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식구라고는 아내와 딸 하나다. 형제를 보는 즐거움은 안쓰러움과 걱정으로 차라리 괴롭다. 먹고살기 바쁜 서울 동생네는 설 당일 새벽 내려와 차례만 지내고 바로 서울로 간다. 형도 그날 하루만 쉰다. 그러니 설이건 추석이건 당일 차례 지내고 부모님 산소 다녀오면 뿔뿔이 흩어진다. 참으로 즐겁지 않은 풍경이다. TV에선 할아버지 할머니 찾아 설 연휴를 보내는 장면이 많이도 나온다. 그걸 보면 부러움과 아쉬움이 함께 해 채널을 돌리곤 한다.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그리움으로 가슴 꽉 채우는 돌기가 명절이면 더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 어제 늦게 서울서 공부하는 아이가 내려왔다. 큰놈 하나 집을 돌아다니니 허전하던 집이 꽉 차는 느낌이다.

    지난 수년의 방학 동안 그 녀석은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계절학기도 듣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 매년 인턴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서다. 좀 내려오라 말하면 눈꼬리 올리며 핀잔에 가까운 말을 뱉는다. “방학마다 내려오면 난 청년실업의 한 멤버가 되는 거야. 죽도록 공부해도 자신이 없는데 방학 놀아가며 어떻게 취업해.” 할 말이 없다. 대학 가는 시험을 위해 하루 5시간도 안 자며 수년을 공부해서 대학을 갔는데 자신의 의지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한다. 이놈은 아마 공부가 제일 싫을 것이다.

    어제 고성의 한 목욕탕. 고온 탕에서 어느 아저씨들의 애기를 듣다가 엄청 땀을 흘렸다. 너무 진지해 탕에서 나가지를 못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분은 아마 덤프트럭 운전이 생업이었고 다른 한 분은 목수로 보였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대로 올려본다.

    “11일째 놀다가 어제 거제에 한 바리 했다. 통영 거제 고성은 이제 다 죽었다. 레미콘 차도 다 논단다. 건설이라고는 원래 짓던 거 빼고 겨우 원룸촌 하나 상가 하나가 짓는 게 다란다. 난 요즘 고성군 버스운전사 자리 있나 알아보는데 그것도 쉽지 않네.”

    “마산 진동은 물론 진주 건설 현장도 다 죽었단다. 나도 일 못한 지 한참 됐다. 그나마 몇 군데 불러서 가면 우리 젊은 아이들이 안 보인다. 다 대학 나와서 거기 오겠나. 전문대 나온 애들 몇이 데모도(조수)하는데 뭘 시키면 ‘안 된다’ ‘못 한다’고 한다. 근데 중국과 베트남 애들은 ‘예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니 누구 일 시키겠노. 일도 부족한데 저러니 일하겠니. 올해는 진짜 힘들다.”

    지난해부터 저녁시간 통영 고성은 휑뎅그렁하다. 설이 다 됐는데도 차분하다. 식당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다. 주말인 11일 설 전에 열린 고성5일장. 대형 마트가 쉬는 날이라 사람이 많았다. 소리는 요란한데 차분했다. 장사가 돼야 웃을 것인데 잘 팔리지 않으니 웃을 수가 없다. 경기를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세계인의 축제 동계올림픽이 내 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그 핑계로 세계적인 인권 유린국 북한의 ‘백두혈통’ 김여정이 미소라는 가면을 쓴 채 이 땅을 찾아와 청와대에서 밥 먹고 우리 대통령을 북한으로 초대하는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도 즐겁지 않다. 일거리가 없어 발 동동거리는 서민들. 그들의 주머니가 이리도 가벼운데 뭐가 그리 즐거울까. 이번 설은 그래서 그다지 반갑지 않다.

    김진현 (통영고성본부장·이사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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