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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오로지 무사하시기를- 손상민(극작가)

  • 기사입력 : 2018-01-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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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연시를 응급실에서 보냈다. 40도 넘게 열이 펄펄 끓는 9개월 젖먹이 둘째를 꽁꽁 싸맨 채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대기인원만 60여명.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를 받기 위해 2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갔다. 그곳 역시 바글바글 북새통이었지만 1시간 남짓 기다린 후 진료 기회를 얻었다. 하루 종일 칭얼대던 아이는 출발 전 먹였던 해열제가 효력을 발휘했던지 막상 의사에게 보였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의사는 아이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집에서 조절할 것을 권했다. 독감 환자들이 너무 많아 병원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의사의 말대로 진료실 책상 위에는 독감검사를 했던 콧물 채취용 면봉의 비닐포장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무런 처치를 받지 않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기를 기다렸지만 열은 내리지 않고 오르기만 했다. 밤 8시가 넘은 시각, 해열제가 듣지 않아 30분을 달려 다시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수액과 해열제를 맞췄다. 열이 떨어지고 아이도 살아났다. 한시름 놓고 집으로 왔다. TV를 켜니 제야의 종을 치는 익숙한 장면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무방비상태로 새해를 맞았다.

    사태가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새벽 4시, 우는 아이의 체온을 재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를 안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35.1도. 고온보다 무섭다는 저체온증이었다.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응급실에 다시 가야 할지 여부를 의논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방법을 찾으며 아이의 몸을 따뜻하게 데웠다. 아침이 되자 아이의 체온도 정상을 되찾았다. 한데 체온만 정상일 뿐 아이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수시로 구토와 설사를 했다. 엉덩이가 헐어 아예 기저귀를 벗겨놓고 안았는데 집에 있는 천기저귀며 수건, 이불을 있는 대로 모두 버렸다. 다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휴일이었지만 다행히 정상진료를 하는 소아과에서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독감검사는 음성, 심한 장염으로 판정받았다. 수액을 맞는 동안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요즘 말로 ‘맴찢’, 마음이 찢어졌다.

    처방받은 지사제를 먹으며 아이는 호전됐고 이틀째에는 약을 중단했다. 여전히 기운이 없긴 했지만 크게 나빠지지 않아 잠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마감해야 하는 업무를 봤다. 기획을 맡은 잡지의 인쇄일이 잡혀 있어 미룰 수 없었다. 내친김에 중앙동 할머니께 가보기로 했다. 남편에게는 친할머니와 다름없는 분이신데 근래 지병과 노환이 악화돼 응급중환자실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뵙지 못한 터였다. 면회시간에 맞춰 남편과 함께 할머니를 뵀다. 얼굴을 알아보시고는 잡은 손을 흔들어주셨다. 가족들은 아무 말씀을 못하시는 할머니가 손뼉을 세 번 치고는 손바닥에 3이라는 숫자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말 못하는 아이와 할머니의 아픔을 헤아려 보았다. 그에 비하면 말할 수 있는 아픔은 그나마 조금 덜 아픈 게 아닐까. 아기, 아픈 이, 동물 …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말 못하는 생명’의 고통을 곱씹어 보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하여 모두들 올 한 해도 무사하시기를.

    손상민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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