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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노준석 산청지역자활센터장

농사에서 찾은 희망 “땀흘려 일하며 ‘신바람 자활’ 돕습니다”

  • 기사입력 : 2017-12-2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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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활사업은 불안정한 생계수단에 의존해 살아가는 어려운 분들에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자들이 경제적인 자립은 물론 심리적, 사회적으로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지요. 어떻게 보면 제가 늘 꿈꿔 오던 농사일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노준석(51) 산청지역자활센터장. 그의 직함을 들었을 때 사무실에서 서류와 씨름할 일이 많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그의 첫인상은 농업에 몸담은 여느 농부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13년부터 산청지역자활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는 부족한 복지 인프라와 자활에 대한 낮은 인지도로 자활사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산청군의 복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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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준석 산청지역자활센터장이 센터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영농기술 배우러 간 자활센터

    그는 처음부터 사회복지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보험영업도 하고 개인사업도 운영했었다. 그러다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농사일’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을 그만두고 영농기술을 배우기 위해 남해의 한 자활센터를 찾았다. 그의 고향은 합천이지만 남해에서 생활하다 아는 지인을 통해 자활에 몸을 담았다.

    “사실 처음 영농기술을 배우러 간 자활센터는 아내가 일하던 직장이었습니다. 그때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를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게 참 미안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을 것인데 기다려 준 아내가 무척 고맙네요.”

    자활센터 교육 프로그램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보여줬다. 평소 관심을 두던 영농기술을 배우는데 그치지 않고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활사업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은 그가 자활사업 관리자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어느새 그는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남에게 다시 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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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화꽃이 활짝 핀 약초재배단지에서 노 센터장(오른쪽 첫 번째)이 회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해에서 산청지역자활센터로

    2010년 남해지역자활센터에서 사업단관리과장 등을 맡으며 자활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인 그는 2011년 산청지역자활센터 업무총괄 실장으로 부임했다. 남해자활센터 교육 참여자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던 그때, 교육 참여자와 강사로 인연을 맺었던 당시 박서영 산청 센터장의 요청이었다.

    그렇게 2011년 산청군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그는 처음에 꽤 당황했다고 당시 느낌을 말했다.

    “복지사업이 지역별로 특색이 있긴 하지만 특히 산청군은 분위기랄까, 문화가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 산청의 복지시설은 요양시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활센터가 있긴 했지만 전문적인 복지 사업을 수행하는 종합복지관 등이 부족한 실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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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보니 지역주민들이 복지사업에 대해, 특히 자활복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시급한 건 자활사업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복지사업인가?’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가 산청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김장김치 나눔’이었다. 자활센터 직원들과 자활 참여자들이 힘을 모았다. 김장김치 나눔을 계기로 그의 진정성이 자활사업 참여자로 전면에 나서기를 꺼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청자활센터가 지역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 때부터다. 당시 약초재배체험장으로 꾸려졌던 산청읍 정광들에 자활센터가 참여해 약초 동산을 꾸몄던 것. 작지만 정성으로 가꾼 약초동산은 당시 산청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의 단골 포토존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후 산청지역자활센터는 산청약초재배단지가 들어선 정광들에서 9000㎡ 규모의 땅에 국화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산청자활센터는 약초의 고장 산청과 자활사업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국화에 이어 산청 대표 약초인 홍화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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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화막걸리



    ◆홍화액상차와 홍화막걸리

    노 센터장은 참여자들과 함께 정광들에서 산청의 대표적인 약초들을 키워 그것을 제품화할 생각을 해 산청 대표 약초인 홍화를 키웠다.

    하지만 처음에는 수확한 홍화를 팔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홍화원에서 전량 수매를 해 주셨죠. 그 뒤로는 홍화 판로 걱정은 한 적이 없습니다. 이후부터는 홍화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산청자활센터의 주력사업이 제 꿈이었던 농사일과도 관계가 있어 힘든 줄도 몰랐지요”

    이때부터 홍화는 산청자활센터의 주력 생산품이자 마스코트가 됐다. 직원들과 자활 참여자들이 신바람나게 일한 결과는 성과로 나타났다.

    첫 자활생산 제품인 홍화액상차를 출시하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시음회를 실시했다. 홍화를 이용한 생산품은 액상차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는 홍화로 만든 막걸리를 출시했다. 맛과 향이 좋아 지역 농협 등 마트에도 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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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화액상차



    노 센터장과 직원들의 노력은 자연스레 성과로 이어졌다. 2014년 지역자활센터 성과평가 최우수 선정에 이어 2015년 평가에서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특히 홍화막걸리는 올해 전국 자활생산품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 전국 자활생산품 판매장터에 입점하게 됐다.

    지난 몇년간 쉼 없이 달려온 노 센터장은 잠시도 쉬지 않고 또 다른 자활사업을 꿈꾸고 있다.

    현재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홍화액상차와 홍화막걸리 등을 자활참여자들이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산청지역자활센터는 홍화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해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까지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노 센터장은 “자활센터에서 수익금은 회원들이 스스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선진지 견학, 문화활동 등에 사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적응 못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센터에서 자활을 배워 독립해 스스로 사회에 적응할 때가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여전히 자활 참여자들과 함께 정광들에 나가는 것이 가장 신난다는 노 센터장. 농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자활사업’이라는 새로운 농사로 그 꿈을 이뤄 가고 있다.

    글·사진= 김윤식 기자 kim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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