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촉석루] 땅이름이 바로 역사다- 김주용(창원대 박물관 학예실장)

  • 기사입력 : 2017-12-19 07:00:00
  •   
  • 메인이미지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면 삼천포와 사천의 통합에 따른 지명 갈등 부분이 나온다. 삼천포와 사천이 합해지니 칠천포로 하면 좋겠다는 주인공의 말에 웃음지었던 기억이 난다. 마산, 창원, 진해 통합에서도 그러했고, 현재 남해와 하동을 잇는 다리의 명칭에서도 자기 지역의 땅이름을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명(地名)은 일정한 지역을 공동으로 약속한 이름이다. 그 속에는 우리의 기억과 의지, 생활 모습이 반영돼 있어 그 자체가 지역 정체성이며 역사가 된다. 그래서 지역의 명운을 걸고 지키려고 한다.

    유적을 조사할 때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지명조사다. 창원 동읍의 합산(조개산)이라는 지명에서 신석기시대 패총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가마골, 독골, 점골에서 자기가마터를 찾을 수 있었다. 말무덤, 고려장터라는 지명으로 고분을, 불당골·절골·탑골에서 옛 절터를 확인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산패총의 성산(城山)은 ‘성이 있는 산’의 의미로 패총, 야철지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원 대산면 우암마을에서도 논 한가운데 있는 우암(牛巖, 소바위)이 바로 고인돌이었다는 것은 이 바위가 바로 청동기시대부터 내려온 마을의 역사이고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에서 몇 번의 격변이 있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757년)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꾼 것이 그 첫 번째요, 그 다음은 일제에 의한 강제 개명, 그리고 1995년 도농통합, 2014년 도로명 주소 본격 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도로명 주소 시행으로 마을과 동 이름 수천 개가 사라진다고 하니,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땅이름이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는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행한 지 4년이 지난 도로명 주소는 우리 집 주소조차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나만의 문제인가? 현재 우리나라 3대 불편 사항이 바로 도로명 주소, 공인인증서, 엑티브엑스라는 말에 더욱 공감이 간다. 지명의 가치와 역사성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이 불편함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김주용 (창원대 박물관 학예실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