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맞닿은 하늘 질펀한 노을이나
술 취한 바람결이 흩고 가는 노란은행잎
언제나
그런 서정만
그대 몫이 되게 할까
형체 없는 그림자야 미리 쓸지 못하지만
노동의 신성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그대의 빗자루 끝에다
놓고 싶은 이 시대…….
사랑의 보습 꽂고 꿈밭 가는 이웃 속엔
생선살에
뿌려지는 소금 같은 약속이 있듯
살뜰한
그대의 비질로
내 뜨락도 쓸어주게
☞ 현실을 깊게 인식하고 나아가 자아 성찰까지 담긴 시조로 읽힙니다. 이렇듯 시인의 눈은 예리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술 취한 바람결이 노란 은행잎을 흩고 갑니다. 은행잎을 포함하여 황갈색 낙엽이 덮인 길을 걷다 보면 가을의 낭만, 그 자체입니다. 산책자나 여행자가 되어 같이 바라보며 즐기고 싶은데, 환경미화원만의 몫이 되어 비질하고, 돌아서면 또 해야 하는 현실을 시인은 가슴 아파하며 시대를 걱정합니다. 그들의 수고도 들고, 눈도 호강하면서, 이 계절의 이맘때는 그대로 두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에 떨어진 낙엽을 그대로 두면 교통에 방해될 수 있고, 썩은 낙엽에서는 악취가 발생하고, 비가 오면 하수구가 막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 식대로 편한 생각만 하고 사는 건 아닌지, 내일 아침에는 슬그머니 비라도 챙겨 집 앞이라도 쓸어야겠습니다. 정이경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