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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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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럽 혁신학교에서 경남 행복학교 길을 찾다 (4) 경남의 행복학교-화제초와 태봉고

자유롭게 재미있게, 아이들의 꿈과 끼 발굴

  • 기사입력 : 2017-10-2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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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시’라는 큰 틀에 매인 학생들은 즐겁지 않은 학교에서 ‘‘미래의 꿈’이 아닌 ‘일탈의 꿈’을 꾸지만 양산의 시골학교인 화제초와 경남의 공립 대안학교인 태봉고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즐기면서 공부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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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화제초등학교 학생들이 역할극 수업을 하고 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양산 화제초= 양산에서도 오지인 원동면에 위치한 시골학교다. 1973년에 개교했지만 여느 시골학교가 그렇듯 인구가 줄어들면서 학생들도 급감해 2006년에는 전교생이 30명으로 줄어들었다. 동문들과 주민들은 너나없이 학교 살리기에 나서 명맥은 유지하게 됐다.

    폐교 위기를 넘긴 화제초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방식의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학교 운동장을 천연잔디로 바꾸는 등 내·외부의 교육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2015년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로 지정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즐기는 학교라는 입소문은 인근 부산까지 퍼져 이 학교로 전학오게 만들면서 올해 학생 수는 100명으로 늘었다.

    화제초의 장점은 일반 학교가 교장-교사-학생이 수직적인 구조인 데 반해 수평적이고 민주적 분위기다. 교장은 교사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 학사일정 등 학교 전반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 학생들도 3학년부터 6학년까지 50여명이 모여 격주로 월요일마다 의사결정기구인 ‘다모임’을 한다. 학생들이 결정한 의견은 다시 교사들과의 논의를 거쳐 규칙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학교생활에 적용한다.

    학생들은 지난 5월 다모임을 통해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세우고 서울과 광주 5·18현장 등을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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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희 교사가 만든 교과서.

    화제초를 찾아간 지난 7월 11일 1학년 교실. 국어수업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교실바닥에 뒹굴거나 웃는 모습이 낯설었다. 다름 아닌 학습주제에 따른 역할극이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도 달랐다. 김진희 교사가 직접 만든 ‘한글 첫걸음’이란 이름의 지역화 교과서다.

    책에는 학교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이 등장인물로 나오고 친근한 마을 풍경을 배경사진으로 학생들이 쓴 시를 수록한 ‘우리들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교사는 “교과서 지문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마을과 연관 지어 설명하니 아이들이 한글을 보다 쉽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 학기 동안에 읽을 책을 선정하고, 같이 읽고 토론하는 ‘온책읽기’와 한 한기에 30회 이상 지역을 돌아보는 지역화 체험수업도 한다.

    화제초의 끊임없는 변화에는 교사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다. 새로운 교육방법과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매주 두 번씩 방과후 ‘번개모임’을 갖고 수업 아이디어와 교수기법에 대해 정보를 공유할 만큼 열의가 높다.

    박정화 교장은 “우리 학교가 가장 다른 점은 교사가 대표적으로 자율성이 높다. 활약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학교의 주체는 나라는 생각이 교사들에게 강하다. 우리 학교 교사는 교육과정은 물론 학교 의사결정의 주체, 아이들에게도 자율성을 심어준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주인인 자율공동체다. 이게 가능한 배경은 민주적인 학교문화, 아이를 존중하고 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 사람을 존중하는 토대에서 수업과 학교경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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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생활용품 판매장이자 회의실, 휴게실, 동아리 모임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학교 내 카페에서 자유롭게 쉬고 있다.


    ◆‘미래 한국형 고등학교’ 태봉고= 창원시 진동면에 있는 태봉고등학교는 전국 유일의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다. ‘입시’를 통한 성과가 명문학교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사립도 아닌 공립에서 입시가 아닌 전인교육을 내세운 대안고등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실험적이다.

    태봉고를 찾은 첫 소감은 놀라움과 파격이다. 학생들의 머리는 천연색 염색머리에 귀걸이를 하고, 자유스러운 복장에 아무렇게나 드러눕고, 교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교장실 한쪽은 ‘사랑방’이라 불리며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도록 했다. 박영훈 교장에 대한 호칭도 ‘영훈쌤’이다. 다소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는 낯선 풍경은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자유스러운 고등학교 분위기가 물씬 났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화나 토론을 통해 도출해 낸 학생들 간의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는, 한국형 고등학교답지 않은 미래의 한국형 학교다.

    태봉고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 교육과정 43%가 특성화 교과(인턴십·이동학습·나눔활동·노작교육(수공할동))로 이뤄져 있다. 다른 고등학교처럼 교과수업을 똑같이 하지만 목공이나 음악, 체험활동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한다. 북유럽의 교육방식과 유사한 부분이다. 이동학습으로 제주도, 지리산, 네팔, 라오스 등을 가고 진로를 탐색하는 진로체험 이동학습 시간도 주어진다.

    특히 이 학교의 교육 핵심 중 하나는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인턴십 교육방식)가 있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동아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계획하고 체험한 뒤 7월에 친구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한다. 발표 때는 질문도 하고 격려도 하며 꿈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응원한다. LTI에 대한 자료는 모두 모아 매년 자료집으로 만들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태봉고 학생들은 이 LTI과정을 통해 꿈을 찾는다.

    피아노 연주가 특기인 2학년 서경석 군은 한 학기 동안 직접 작곡한 곡을 들려줬고, 한 학생은 혼자 제주도를 여행하며 좌충우돌했던 경험담을, 한 학생은 대학 가는 것을 보류하고 1년간 고민해보겠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1학년 한 학생이 고민 끝에 입학했지만 기대와 달라 학교에 자주 빠졌고 그만둘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털어놓자 친구들이 “다시 잘해보자”며 안아주고 자신의 일처럼 가슴아파했다. 또 다른 학생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와 춤을 배우고 싶은데 경제적인 문제로 아쉬웠던 얘기 등을 들려줬다.

    태봉고는 지난 3년간 LTI 활동을 분석한 결과 졸업생의 80%가 LTI 활동과 관련한 분야로 자신의 꿈을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태봉고의 바탕에는 학생중심의 학교문화와 민주적 의사결정이 깔려 있다. 학교의 중요 사안은 매주 수요일 전교생과 모든 교사가 참석하는 공동체회의에서 결정한다. 회의는 학생회장이 진행하고 교사나 학생 모두 발언권을 얻어야 하며 투표권도 모두 한 표씩 갖는다. 회의 결정에 따라 벌칙 등 생활 규율이 결정된다.

    박영훈 교장은 “차별화된 교육은 프로그램보다 사람에 달려 있다. 어떤 마음을 갖고 다가서느냐,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교육과정 면에서 입시보다 아이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는 데 근접한 LTI 교육이 학점제와 연계해 일반학교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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