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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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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관리의 시대- 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10-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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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의 성적을 관리해 드립니다.’

    언젠가 신호 대기 중 학원 광고 현수막을 보더니 옆에 타고 있던 딸애가 혼자 중얼거렸다. “쌓인 성적이 있어야 관리를 해 주든가 하지.”

    딸애의 엉뚱한 말에 웃고 말았지만, 이 시대는 정말 ‘관리’의 시대인 것 같다. 종합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면, 안과에서는 눈 관리, 치과에서는 지속적인 치아 관리를 강조하고, 그리고 꾸준한 운동을 통한 건강 관리를 강조한다. 미용실에 가면 두피와 모발, 피부 관리실에서는 피부가 관리 대상이 된다.

    나의 직장인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출결 관리, 취업 관리, 생활지도 관리 등 관리의 연속이다. 특히 내가 제일 주눅 드는 곳은 자동차 정비소다. 엔진 오일을 제때 갈지 않았다느니, 타이어 체크를 제대로 안 했다느니, 말하자면 자동차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고 일장 훈시를 듣는다.

    그러나 내가 들은 ‘관리’ 중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관리는 ‘인간 관리’다. 물론 수많은 인맥 중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을 구분해 에너지를 특정한 사람에게 좀 더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목적에서 사람을 나누고 관리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처럼 말이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내 어머니의 큰 자랑 중 하나는 내 친구들이 당신을 친어머니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자주 찾아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이름을 다 기억하시고, 내 친구들과 같이 그때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어머니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큰 행복이다.

    만일 어머니가 어린 시절 나에게 친구를 ‘관리’하게 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친구들은 내게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그저 만나고 어울리는 대상이지 관리의 대상은 아니다. 관리할 성적이 없다’는 딸아이의 말에 잔소리보다는 웃음이 나고, 피부 관리숍이나 자동차정비소에서 항상 주눅이 드는 나는 아무래도 ‘관리형 인간’은 못될 것 같다.

    김은정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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