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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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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항일투사 발굴에 평생 바친 향토사학자 추경화 씨

“오늘을 있게 한 역사와 공훈은 꼭 인정받아야 합니다”
증조부의 항일 행적 찾다 다양한 역사적 문헌 접해

  • 기사입력 : 2017-10-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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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사학자 추경화씨가 애국지사 관련 각종 자료사진과 상패를 설명하고 있다.


    항일독립투사 발굴과 지역문화재 연구에 평생을 바친 향토사학자 추경화(67)씨. 그는 지난 30여년간 이름 없이 묻혀 있던 항일투사 수백명을 발굴해 공훈을 받게 한 인물이다. 넉넉지 못한 살림으로 매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가 이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꼭 해야 할 일인데도 하는 사람이 없어 자칫 영원히 묻힐 것이 우려돼 자신이 나섰다고 한다.

    추씨는 지금까지 900여명의 항일투사를 발굴해 이 중 150여명에게 훈·포장을 추서케 하고, 항일투사열전 등 9권의 저서 편찬, 100여회의 독도사진자료 전시회를 했다. 진주를 비롯한 산청, 하동, 고성군 등에 이들의 추모비, 공적비를 건립하는 데도 앞장서 묻혀 있던 항일투사들의 공적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했다. 특히 독도에 독도리를 창설해 해당 지자체가 공시지가를 산정케 한 일은 당시 크게 주목받았다.

    현재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추씨는 항일투사 발굴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독도지키기 운동을 비롯해 촉석루 국보 재지정 운동, 진주시 등 서부경남지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의 품격 높이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

    ▲항일투사 발굴과 지역문화재 연구에 투신하게 된 계기= 추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역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집안 어른으로부터 증조부(추상관)가 조선말기 의병장 직속 의병부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확인하다 대한민국의 특성상 같은 유형의 인물이 부지기수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도서관, 부산부전 도서관, 국가기록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문헌들을 접하게 됐고, 자신과 같이 조상의 행적을 찾아다니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지식을 공유하는 등 서로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서로의 인적사항을 교환하고 소지하면서 문헌을 찾다 자신의 조상이 아닌 사람들의 행적도 많이 찾아냈고, 이런 일들이 계기가 돼 당시 전국적으로 조상의 행적 발굴 붐이 일기도 했다고 추씨는 회고한다.

    ▲애국지사 발굴은 언제부터이며 지금까지 발굴한 애국지사는 얼마나 되는지= 추씨는 1987년부터 이 일에 빠져들어 벌써 30년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동안 900여명의 애국지사를 발굴해 정부포상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추씨가 발굴해 정부포상까지 성사시킨 인물은 진주 출신 26명, 하동 14명, 산청 14명, 고성 12명, 사천 5명, 합천 6명, 마산, 의령 각각 3명을 비롯해 강원도 장촌단 사건 8명, 제2의 광주학생사건 5명, 김천, 청도 군용열차 사건 각 3명씩, 호남지역 의병들, 충청지역 3·1운동 관련 인물, 경주, 대구 3·1운동 투사 등 모두 150명에 달한다. 추씨는 900명 모두가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이 아쉬워한다.

    ▲독도사랑이 남다르다는데= 일본과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창 다투던 2000년 1월, 독도는 있으나 구체적인 행정구역이 없는 점에 착안, 독도에 ‘독도리’를 창설하고 공시지가 산정을 위해 행안부장관, 경북도지사, 울릉군수, 울릉군의회 등에 청원서를 올렸다.

    당시 청원서에는 진주지역 변호사 11명, 경상대, 진주교대 교수, 환경운동연합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62명이 서명했고, 그해 5월에 독도리를 창설, 9월에 공시지가 산정을 성사시켰다. 그 후에도 경남문화예술회관과 사천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서부경남 지역에서 독도사진 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고 수차례의 관련 강연회를 열기도 해 남다른 독도사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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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 선생이 발굴한 진주·진양 출신 항일투사 173명의 공적을 기록한 추모비.

    ▲지금까지 밝혀낸 향토사와 저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진주시 이반성면 소재 임진공신 김준민 형조판서 신도비를 찾아내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케 했고,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인물들을 찾아내 시·도 등 자치단체와 후손들에게 제공했다. 추성원 효행상서문을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케 하고, 사봉면 함평모씨 모순 선생의 효행정려비를 14년 투쟁 끝에 2015년 경남도 문화재 제295호로 지정케 했다.


    하동군의 지원을 받아 하동독립유공자공훈록을 저술하고, 함양문화원의 지원으로 함양항일투사록을, 경남도 문예진흥기금으로 진주항일운동사와 산청항일운동사를 저술했다. 특히 고성의 항일투사 12명을 발굴했던 추씨는 올해 발간된 고성항일운동사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친일파 8명이 기재된 것을 찾아내 지난 6월 사회문제화시키면서 시정을 촉구했다.

    충효자료집을 발간하고 아름다운 항일정신 시집도 발간한 것이 계기가 돼 1984년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왜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후손들의 무관심이 크다고 본다. 내가 자료를 찾아내 보훈청에 신청하려면 유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오히려 유족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제 치하에서 먹고살기 위해 숨기고 살아온 관행이 지금도 남아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후손들이 관심을 갖고 나선다면 훨씬 더 많은 애국지사들이 공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무관심도 한몫한다. 나라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의 발굴에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주는 한국전쟁 당시 진주관청이 불에 타 많은 문서들이 소실되는 바람에 근거가 없어 아직도 많은 항일투사들이 공훈을 받지 못하고 있어 상당히 안타깝다.

    ▲이 일을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모든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신석우 선생이다. 신 선생은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하신 분으로, 임시정부 회의에서 ‘대한제국을 승계하는 민국’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국호를 제안했다. 당시 “우리가 대한으로 망했는데 다시 같은 말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여론이 일자 “대한으로 망했으나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고 제안해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이분은 1995년 독립장을 받게 해드리고, 지금 기념비 건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

    또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에 진주와 진양의 항일투사 147명의 이름과 공적을 적어 추모비를 건립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독도 사진자료 전시회와 강연회를 계속하고 싶다. 항일투사 100명을 추가로 포상토록 하고 싶고, 특히 문화재품격높이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진주에 있는 영남포정사 문루가 건립된 지 400주년인데 현재 안동 고택 화장실보다 등급이 아래다. 촉석루와 북장대, 의기사, 창렬사 등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대다수 진주시민들이 모르고 있다. 이들 문화재보다 일본 해군들이 사용한 1944년 진해우체국과 일제 때 군수를 지낸 사람의 일제 방식 자택, 일제 때 사용된 물탱크가 촉석루, 영남포정사 문루보다 등급이 높다는 웃기는 사실을 접하고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경남지역에 산재한 비문화재를 경남도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글·사진=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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