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세상을 보며] 되돌아온 일상, 절차탁마의 마음으로 - 김진현 (통영고성본부장·이사 대우)

  • 기사입력 : 2017-10-10 07:00:00
  •   
  • 메인이미지


    많이 쉬었다. 푹 쉬었다. 장장 열흘이다. 일이 바빠 못 쉬었던 분과 자영업하시는 분들에겐 죄송한 휴식이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직장인들은 잘 쉬었다. 여행 다니느라 못 쉬었다는 농은 거울 통해 보이는 자신의 맑아지고 따뜻해진 눈빛을 보며 속으로만 해야 한다.

    30년이 넘은 직장 생활 중 이토록 오래 휴식을 취해본 적이 있었을까. 가물가물한 기억의 편린을 더듬지만 쉬 떠오르지 않는다. 긴 연휴. 무엇을 했나. 직업이 기자다 보니 고성군이 추석 연휴에 시행한 종합대책이 잘 되고 있는지 상황실도 가보고, 당항포에 손님이 많은지 나들이 겸 취재도 가봤다. 그것도 나들이랍시고 동행한 가족들의 눈초리는 상상에 맡긴다.

    휴식(休息)은 사전적 의미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이다. 한자로 풀이해보면 휴(休)는 인(人)과 목(木), 식(息)은 자(自)와 심(心)이다. 휴식의 참뜻이 사람이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휴식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기쁨의 하나로 일한 뒤 쉬는 것’이라 했다.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는 휴식의 참된 진미는 일하는 사람만이 안다고 했다.

    이리 휴식을 말하지만 열흘간의 연휴가 달갑잖은 사람도 많았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고3 수험생의 부모인 동생네도 불만 가득이다. 추석 전날 밤 11시 가게 문을 닫고 추석 당일 새벽 1시 넘어 고향으로 출발. 새벽이라 4시간30분이 걸렸단다. 한숨 돌리고 차례(茶禮)를 지냈다. 삼형제 오랜만에 모여 아침을 먹고 세상사 말하고 부모님 산소 들렀다 오전 10시 30분 다시 서울로 출발했다. 장인 장모도 찾아뵈야 하고 가게 문 열 준비도 해야 하지만, 집에서 책과 씨름 중인 핵폭탄 같은 고3 조카 때문. 무려 7시간이 걸렸단다. 고향서 머문 시간은 5시간인데 이동시간은 왕복 11시간30분이다. 동생네가 더 화나는 것은 서울 도착해서부터. 긴 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관광지로 떠나서인지 이번 연휴가 최근 들어 가장 장사가 안 된 명절이었기 때문이다. 레저업에 종사하는 형님은 달랑 이틀을 쉬었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조카도 납품기일 때문에 2교대로 3일씩을 쉬었다. 조카네 회사 식당 조리사들은 달랑 하루만 쉬었단다. 특근수당을 받았을 거란 말은 쉰 사람의 오만이니 속으로만 하자.

    또 우리네 어머니들과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은 3일간의 명절이 지나도 집에서 세 끼니를 꼬박 챙기며 삼식이처럼 붙어있는 내 남편 내 아이들로 인해 더 괴로웠으리라. 확실치는 않지만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증상이 있다. 명절증후군이다. 위키백과에는 대한민국에서 명절을 보내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현상이라고 되어 있다. 장거리 운전자와 일상생활과 다른 긴 연휴로 인해 생체 리듬이 깨진 직장인에게도 나타나겠지만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연휴 후 더 많아질 것이다. 아내와 엄마를 위해 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며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인 호메로스는 너무 긴 휴식은 고통이라고 했을까.

    긴 휴식 동안 난 무엇을 했나? 재충전이었다면 좋다. 지나온 2017년을 되짚어 반성하며 연말을 대비한 시간이었다면 더욱 좋다. 시경에는 여절여차 여탁여마(如切如磋 如琢如磨) 즉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글이 있다. 길었다지만 순식간에 지나간 열흘간의 꿈 같은 휴식. 그 끝에 찾아온 일상의 아침. 칼로 가르고 줄로 쓸며 끌로 쪼고 숫돌로 갈아낼 시간이 시작됐다. 올 초 내가 세웠던 목표를 향해 다시 나의 소중한 일터로 나가보자.

    김진현 (통영고성본부장·이사 대우)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