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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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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카메라에 담은 런던마라톤(2)

거리로 쏟아져 나온 런던의 다양성

  • 기사입력 : 2017-09-2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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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톤이 절정에 달한것은 특이한 복장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부터였다. 이름 모를 코스튬(무대에서 시대나 등장인물의 역할을 나타내는 의상)부터 다들 아는 배트맨 같은 캐릭터들까지, 아이에서부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뛰는 모습은 그날 하루만으로 느낄 수 있는 런던의 다양성이었다.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즐거움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무척 인상 깊었던 캐릭터들은 아직도 같이 달리듯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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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 본 런던마라톤.



    코스튬은 무슨 의미였을까. 이 특이한 분장들에는 축제를 즐기는 그들만의 만족감도 있을 테지만 자세히 봤을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각자 소속된 단체(대부분은 사회적인 연구를 하는 연구기관이나 자선단체로 보였다)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혹은 후원계좌를 몸에 들고 달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후원을 독려한다거나,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의 사진과 이름을 몸에 새기고 뛰기도 했다.

    런던 모두의 축제이면서 구성원 개개인에게 유의미한 시간들이 바로 런던마라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e on Max!”, “Run! Matis You are the Best!” 사람들은 지쳐가는 기색도 없이 마음에 드는 코스튬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빈틈없이 사람들의 소리가 주변에 차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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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순간, 맑은 하늘에 틈도 없이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의 잡다한 큰 소리들을 뒤로 하고 멀리서 뛰어오는 한 그룹이 있었다. 나는 길쭉한 렌즈로 그 쪽을 잡았고 응시했다. 그때 시야에 들어온 건 그들의 희미한 빨간 옷이 아니라 저 멀리서 도미노처럼 뛰어오던 신기한 적막(寂寞)이었다.

    화려한 코스튬 같은 시각적인 것들이 아니라 오는 내내 점점 번지듯이 사라져가는 청각. 사고라도 났나 싶을 정도로 처음 그들을 초점 잡은 이후는 조용하기만 한 일군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점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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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묵묵히 뛰고 있었고,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듯 음성이 모두 사라져갔다. 그들 무리가 입고 있던 것은 ‘군복’이었다. 그것이 코스튬인지 혹은 그들이 실제 군인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이 군인의 행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하늘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대신 모두가 일제히 아무 말 없이, 하던 일도 멈춘 채로, 손에 든 일체의 것들은 어딘가 두고 그들이 지나는 순간을 박수소리로 대신했다.

    그 박수에는 어떤 조롱도 비아냥거림도 없었다. 오롯이 나라를 위해 대신 싸우는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존재했다. 사진기를 든 나 또한 한두 컷이 지난 후에는 사진기를 어깨에 들쳐 업고 같이 박수로 그들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병장 전역을 한 내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러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대우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들도 간단하게 짧은 박수로 화답하며 전방을 응시하며 마라톤을 이어갔고 다시 점점 멀어지는 그들을 따라 가는 길 주변도 점차 조용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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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코스튬을 입고 달리는 사람들.



    그들의 전 후방 몇 미터에 마치 음소거 기능을 가진 둥그런 막이라도 씌인 것처럼 그렇게 지나가며 내게서 점차 멀어졌고 “Come on Chris!” 라는 외침과 함께 다시 내가 서 있는 곳은 사람들의 응원소리와 대마초의 향과 맥주거품이 가득 찬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누구나 숭고했던 얼굴은 이내 없어진 채로 꿈이라도 잠깐 꾼 건지, 혹은 꿈에 그리던 여자가 내 옆을 지나갈 때 느껴지는 잠깐의 적막과 슬로우 모션 현상을 경험한 건지.

    그 황홀하지만 적막했던 존경의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번 글은 내가 경험했던 런던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그곳에서 가장 강렬했던 그 한 장면을 쓰고 싶었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병장 만기제대를 하고 사회로 나온 지극히 평범한 한국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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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등장하자, 일제히 적막에 휩싸였고 곧 박수소리만 가득했다.



    외국에 다니며 자기소개를 할 때 ‘South Korea’라는 국적을 밝히면에 심지어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외신에 자주 뜨는 ‘Kim Jeong Eun’ 과 ‘North Korea’ 덕분에 더 유명해진 ‘Korea’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다음 질문하는 것이 ‘너도 군대 다녀왔어?’ 라는 물음이다. 그리고 내가 ‘Yes, 2 years’라는 둥의 답을 하면 그 친구들은 놀라기도 하고 무섭다고도 하며 내 헌신에 지금껏 누구도 보내주지 않았던 경의를 표하기도 했었다.

    언제나 머쓱했다. 대한민국 남자는 보통은 다들 하는 건데 나는 과연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일을 군대에서 하고 온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다. 약간은 으쓱하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런 외국에서의 경험은 이 사람들의 어떤 인식에서 나오는지 굳이 한 명 한 명 만나가면서 심층적으로 알아보지 않아도 런던마라톤에서의 그 한 장면에서 다 알아 챌수 있었다.

    누군가 앞으로 런던을 찾는 이가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기간이 런던마라톤이 열리는 4월 말이라면 꼭 마라톤을 경험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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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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