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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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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184) 제20화 상류사회 34

‘파란만장하게도 살았구나’

  • 기사입력 : 2017-09-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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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란은 서경숙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녀가 사례를 하겠다고 하자 삼호가든으로 나왔다. 서경숙이 약속장소를 묻자 그녀가 지정한 장소는 수색에 있었다.

    “나와서 고마워요. 술은 마셔요?”

    삼호가든은 찾기가 쉬웠다. 안주를 주문한 뒤에 유미란에게 물었다.

    “네.”

    유미란은 화장을 했으나 청스커트와 셔츠 차림이었다. 서경숙은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술을 몇 잔 권했다.

    “윤사월씨와 무슨 일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을 만나자고 하시고…….”

    유미란은 사양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무슨 일이라기보다 실체를 알고 싶어요.”

    “왜요?”

    “일이 좀 있어요. 어떤 여자인지 파악해야 하는… 책을 내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윤사월씨가 안내겠대요. 출판사도 손해 보고 나도 손해 봤어요.”

    유미란은 윤사월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보상은 받았어요?”

    “그 여자가 얼마나 인색한데 보상을 해주겠어요?”

    “원고를 좀 보여줄 수 있어요?”

    “보여줄 수는 있지만…….”

    “공개하지 않을게요. 사례도 하고…….”

    유미란은 망설이다가 프린트해온 윤사월 이야기를 서경숙에게 넘겨주었다. A4용지로 65페이지에 이르는 양이었다. 서경숙은 유미란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윤사월의 일대기를 읽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하게도 살았구나.’

    서경숙은 윤사월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탄식했다.

    윤사월은 1951년에 출생했다. 1951년은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군인들뿐이 아니라 민간인들도 속절없이 죽어갔다.

    윤사월은 전쟁고아가 되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두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 치열한 고지전을 벌이던 아버지가 강원도 어느 골짜기에서 전사한 것이다.

    “내 나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산골짜기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최소한 아버지가 죽은 장소라도 알고 싶었다. 포탄이 아버지의 육신을 산산이 찢었을 때 흘러내린 피가 스며든 땅이라도 가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두 살 때였다.”

    윤사월의 고백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윤사월의 어머니는 윤사월을 혼자 키우면서 살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이 났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공장은 파괴되고 실업자들이 거리를 메웠다. 걸인들과 고아들이 몰려다니면서 동냥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윤사월의 어머니는 돈 많은 남자의 첩이 되었다.

    ‘굶어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하든지 살아야지.’

    윤사월이 다섯 살이었을 때였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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