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비행기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잠에 떨어진 것이다.
‘준석이는 떠났구나.’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이준석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그는 아직도 비행기에 있을 것이다.
‘준석이도 새 출발을 해야지.’
서경숙은 밖을 내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젊은 남자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커피를 마시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파트 광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있었다. 아파트 광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에는 사람들이 출근을 하거나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 나도 이제 뭔가 달라져야 돼.’
서경숙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 주체적으로 살아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의 의도대로 살아오지 못한 것 같았다. 세수를 하고 30분 정도 산책을 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거실에 헬스기구를 주문하여 설치하고 운동법도 익혔다. 점심을 먹고 추리닝도 두어 벌 구입했다.
갤러리에 나가자 윤사월이 와 있었다. 그녀가 현금이 많고 사채업자라는 사실에 공연히 긴장이 되었다. 심은지가 윤사월에게 갤러리를 안내했다고 했다.
“연락을 주셨으면 제가 미리 나왔을 텐데요.”
서경숙은 윤사월에게 대추차를 대접했다.
“그림을 살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림 안 좋아하세요?”
“난 무식해서 그림 잘 몰라.”
윤사월은 승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절에서 일을 하는 것 같은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사채업자라면 악독해 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윤사월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윤사월도 여러 사람들이 수행원으로 따라다녔다.
“전에 나를 본 적이 있지.”
“전에요?”
“기억을 못하나 보군. 젊은 사람이 이렇게 기억력이 없어서야.”
윤사월이 혀를 찼다. 그러나 서경숙은 윤사월을 만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윤사월도 그 이야기는 계속하지 않았다.
“진영숙이 만났지?”
“예?”
“무슨 얘기를 하던가?”
“별 이야기 없었어요.”
“고약한 년이야. 내 땅을 거져 가져가려고 그래.”
“예?”
“내가 판교에 땅이 좀 있어. 거기가 개발된다니까 팔라는 거야.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면 수백억을 벌 수 있어.”
서경숙은 윤사월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